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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만 하는 한국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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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JTBC 보도국
스포츠문화부 차장

최근 SNS에 나돈 ‘우리 드라마의 장르별 특징’이란 게 있다. 미국·일본 드라마와 비교했다. “한국 의학드라마-병원에서 연애한다, 파일럿드라마-공군에서 연애한다, 경찰드라마-경찰서에서 연애한다, 스포츠드라마-운동하다가 연애한다….” 이런 식이다.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각을 좀 바꿔보면 한국 드라마들은 지겹도록 사랑 타령만 하지만, 모든 장르를 로맨스물로 귀결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은 드라마 한류의 주요 장르도 로코(로맨틱 코미디)다. 가령 국내 최고 작가인 김수현 드라마는 해외에 거의 팔리지 않는다. ‘겨울새’ 딱 한 편이 일본에 판매됐을 뿐이다. 사극은 역사적 경험이 다르니 당연히 별로 인기 없다. 국내에서는 시청률 즉효약인 ‘막장’ 코드 연속극들도 별 재미 못 본다.

 유럽 내 한류 전문가인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학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한국 드라마들이 “서구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완전히 사라진 로맨티시즘을 담고 있어 기존 서구 드라마에 식상한 팬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대중문화 텍스트뿐 아니라 서구의 남녀관계에서 점차 로맨티시즘이 사라지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남녀가 사귀면 육체적 관계로 직행하는 서구와 달리 에로틱하기보다는 수줍은 연애감정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전시하고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우리 로맨스물에 서구 팬들이 향수와 매력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지금 국내 로맨스 드라마는 엄청난 장르 포섭력을 보이며 진화해 가고 있다. 기혼 남녀의 로맨스를 통해 사실주의 문학이 이룩했던 것 못잖게, 한국 사회 속물주의에 대해 살 떨리는 보고서를 내놓는가 하면(JTBC ‘아내의 자격’), 로맨스를 통일이라는 사회 이슈와 결합하기도 한다(MBC ‘더 킹 투하츠’).

 과거를 빌려 현재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사극도 억압이 많기에 더욱 극적인 사랑의 전개가 가능한 로맨스의 시대 장치로 종종 차출된다(MBC ‘해를 품은 달’, KBS ‘공주의 남자’). 최근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time slip)이 로코의 대세다. 조선에서 온 선비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아니라 풍류를 아니 현대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연애 고수로 그려낸 tvN ‘인현왕후의 남자’가 대표적이다.

 물론 장르 편식은 큰 문제다. 한류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연애란 고통스러운 삶이 선사한 유일한, 최고의 판타지”라고 했던 이창동 감독의 말을 빌리면 글로벌 마켓에서 공인받은 바, 연애 판타지의 최상치를 제공하는 우리 드라마들을 타박할 일도 아니다 싶다.

 연애 드라마만 판친다면 그건 현실에 진짜 사랑이 없거나, 연애 대리체험에 기대서라도 탈주하고 싶을 만큼 현실이 팍팍한 것 아닐까. 늘 그렇듯 진짜 문제는 TV 안이 아니라 TV 밖 현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