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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이석기 제명, 신중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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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국회가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제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국회법 138조 자격심사 표결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지도부에다 박근혜 의원까지 가세해 ‘자격심사’는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정당한 것일까. 아무런 문제 없이 될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이석기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종북(從北) 성향 혐의를 받고 있다. 우선 경선 부정에 대해선 많은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다. 주사파인 구(舊)당권파가 핵심 세력인 그를 국회에 보내기 위해 대규모 부정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무도 확실한 증거는 대지 않고 있다. 당 진상조사위는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하면서도 ‘책임자’는 지목하지 않았다. 이석기는 물론 어떤 이름도 없었다.

 이는 예상된 것이었다. 당은 수사권이 없어 관련자를 신문하거나 통화내역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런 당이 어떻게 범인을 가려내나. 내부조사도 그러했는데 외부 국회가 특정인의 경선 부정 혐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국회가 제명을 의결한 후 검찰 수사에서 아무런 혐의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가 이석기와 김재연을 제명하면 조윤숙과 황선 후보가 승계하게 된다. 이석기·김재연처럼 ‘부정 경선’을 거쳤다는 이유로 두 사람도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는 이들도 제명해야 한다. 뇌성마비 환자 조윤숙은 장애인 대표로 후보가 됐다. 그런 장애인 대표를 구체적 증거도 없이 국회가 내쫓을 것인가.

 종북 혐의라는 이유로 제명하는 건 더욱 힘들다. 이석기는 주사파 반(反)국가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에서 활동했다. 명백한 종북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징역을 살았고 복권되어 피선거권도 얻었다. 정식으로 선관위 등록과 유권자 투표를 거쳐 의원이 됐다. 물론 그는 지금 여전히 종북 의식에 갇혀 있다는 강한 의혹에 휩싸여 있다. 그렇다고 종북 범죄를 새로 저지른 것도 아닌데 국회가 그를 제명할 수 있나.

 의원 자격을 따지자면 종북 성향만 문제인가.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33인 중에서 유일하게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갔다. 그런 그는 의원 자격이 있나.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사회주의 혁명자금을 마련한다고 동료들과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집을 털려다 잡혀 감옥에 갔다. 그는 의원 자격이 있나.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사회주의 혁명조직 남민전 활동으로 징역을 살았다. 전향했다고 종북 경력이 없어지는가. 그리고 진보당 내 다른 주사파 의원들은 어찌 할 것인가.

 주사파가 대한민국 국회에 들어간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인 스스로의 업보(業報)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사면·복권해 주지 않았다면 종북파 상당수는 의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이 정권을 선택했고 정권이 종북 의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언론과 야당의 책임도 크다. 지난 4·11 총선에서 언론이 종북파 후보를 상세히 파헤쳤더라면 유권자는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표에 눈이 어두워 야권연대라는 방패로 진보당을 보호했다. 이제 와서 그들이 이석기·김재연을 제명하겠다는 건 일종의 면피전략이다.

 종북파 의원을 막을 수 없다면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회·언론·시민단체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사회의 종북 경고등은 24시간, 365일 켜져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은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눈을 감았고 이명박 정권에서 졸았다. 그런 국민이 경고등을 보고 일어나 깨어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종북에 분노하는 건 공산주의가 지닌 비(非)이성 때문이다. 사회가 그들과 싸우는 건 자유민주체제의 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 자유민주 사회가 종북을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비이성에 의존해선 안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또 다른 우상에 묶는 것이다. 이석기 제명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석기보다 이성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