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월 ‘수퍼 쿨비즈’서울시 반바지 실험정말 쿨할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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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줄이는 데 일가견 있는 일본인들은 2005년 ‘쿨비즈(cool biz)’라는 말을 만들었다.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를 결합한, 시원하게 입는 간편 출근복쯤 되는 말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시작한 ‘쿨비즈’ 캠페인 성과가 좋았는지, 같은 해 겨울엔 ‘웜비즈(warm biz)’가 생겼다. 지난해엔 ‘수퍼 쿨비즈’도 등장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서 에너지 초긴축에 들어간 것이다.

쿨비즈는 한국에서도 여름 남성 패션의 키워드가 됐다. 올해는 ‘수퍼 쿨비즈’도 바다를 건너왔다. 서울시가 최근 공무원 복장 지침을 바꾸면서 6~8월을 ‘수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한 것이다. 이 기간엔 일본 공무원들의 반바지 차림 허용을 참고해서 서울시도 반바지와 샌들을 허용해 에너지를 아끼겠다고 한다.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능률이 오를 것이라는 찬성과, 반바지가 공무원의 품위를 해친다는 반대 의견이다.

사실 반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이를테면 양말로 포인트를 주거나, 바지에 맞춰 로퍼나 스니커즈를 신거나, 자연스레 주름진 마 소재 재킷을 입어 진정 쿨하게 ‘쿨비즈’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어렵다는 거다.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도 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투자하면서 옷 입는 법도 익힌다. 쇼핑에 들인 시간과 실패한 쇼핑에 쓴 돈이 수업료다. 그래야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고, 옷 좀 입는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이런 배움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옷을 스스로 입는다기보다 옷이 입혀진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남자들은 어렸을 땐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여자친구가, 이어서 아내가 입혀주는 옷을 입는다. 아내마저 바빠지면 매장 직원이 감언이설로 남자의 옷을 입혀준다. 이런 보통 남자들이 입는 반바지라면 ‘추리닝’과 등산 바지부터 떠오른다. 화보에 등장하는 ‘버뮤다 쇼츠’가 옷장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포인트를 주는 양말 대신에 발목 위로 길게 올라간 희고 검은 양말이 더해질 터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출근용으론 무리다.

실용적이고 편하면 됐지 보이는 게 뭐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옷차림은 남의 눈에 의존하는 속성이 있어 나의 편안함·만족감이 중요한 만큼 남의 시선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소재가 얇고 맨살이 드러나는 여름옷은 더욱 시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결국 남의 눈 신경쓰이고 안 입던 옷을 입는 게 외려 불편해 반바지가 암만 시원해도 마냥 반가운 공무원이 많을 것 같진 않다. 2008년 여름 반바지·샌들을 허용한 대구시 서구청에서 1년 만에 슬그머니 반바지가 사라진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일단 서울시의 새로운 지침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5월부터 9월은 재킷을 금지한다는데, 뭘 금지까지 했을까. 실내온도는 28도로 맞추고 더워도 재킷을 입겠다는 사람은 입게 내버려두면 될 것을). 하지만 “25개 구청과 산하 출연기관,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동참을 유도할 방침”이라는 걸 보니 공무원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될 것 같다. 정책 홍보와 매체의 보도 관행을 봤을 때 한 번쯤은 ‘반바지 입은 시장님’이 뉴스에 등장할 것도 같은데, 공무원들이 나 몰라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도 같다.

반바지 허용은 실용적이어서 좋고 에너지를 절약해서 좋은 일이다. 반대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반바지 자체가 공무원의 근무자세와 품위를 해칠 것도 없다. 다만 좋자고 입는 옷이 부담이 되고, 미적으로 보기 좋을 가능성도 썩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이러다 말겠지”라는 의견이 대세라는데, 과연 서울시의 실험이 어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홍주희 기자 honnghong@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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