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 신숙자 모녀 강제구금” … 17년 전 결정 번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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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의 신병과 관련해 유엔이 “북한 당국이 임의적으로 구금 중”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북한에 석방과 배상을 촉구했다. 유엔이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에 대해 ‘임의 구금(arbitrary detention:명확한 범죄 증거 없이 강제로 구금)’으로 판정하고 송환을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씨의 남편 오길남(70)씨와 함께 유엔에 대해 청원을 해온 ‘북한 반(反)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ICNK)’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이하 실무그룹)의 이 같은 결정문을 공개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4월 27일 ‘신씨는 간염으로 사망했고, 오길남씨의 두 딸은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답변서를 받은 실무그룹이 지난 2일 결정문을 작성했으며 북한 측에 이를 통보한 뒤 지난 26일 ICNK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ICNK가 공개한 결정문에서 실무그룹은 북한의 강제 구금에 대해 “세계인권선언(8, 9, 11조)과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등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신씨의 두 딸 오혜원·규원씨를 즉각 석방하고 적절한 배상을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결정은 1993년 오길남씨가 낸 청원에 대해 실무그룹이 "사실관계가 불충분하다”며 기각(1995년)한 사안을 번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번 결정은 신씨 문제에 대한 유엔의 강력한 해결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93~95년 요덕수용소에서 신씨를 봤다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지난 17년간 축적된 북한 인권 실상이 모여져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도 “이번 판결문은 국제사회가 신씨 모녀 문제에 대한 공통된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며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 최대한 신속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로써 공은 북한에 넘어간 셈이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대응을 지켜본 뒤 유엔 무대에서의 공식 의제화 등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판결의 법적 강제성은 없다”며 “그러나 북한 당국엔 무시하지 못할 국제적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통영의 딸 송환대책위원회는 조만간 국내외 전문가 200여 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구성해 각국에서 신씨 모녀의 석방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또 ICNK와 오길남씨 등은 7~13일 런던·제네바·브뤼셀 등을 방문해 신씨 모녀의 송환을 촉구할 계획이다. 하태경 의원은 “신씨 문제를 국제 이슈화한 뒤 유엔 안보리를 거쳐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진정이 유엔 안보리 의제로 오르거나 국제형사재판소로 상정된 사례는 아직 없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양지안리처럼 유엔에 의해 강제구금 판정을 받고 국제 이슈화된 뒤 석방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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