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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스트레칭, 이 고소한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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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청심국제고 학생들이 25일 전북 임실군 치즈마을에서 치즈를 늘려 뽑는 스트레칭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지난해 5만7000여 명의 유료 체험 관광객이 찾아 왔다. [프리랜서 오종찬]

최근 귀농·귀향이 늘고 있지만 우리 농어촌은 고령화 등으로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10~20년 내 상당수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뭉친 주민들이 낡은 마을을 혁신하는 사례들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앙일보·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자기만의 색깔로 평범한 마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농어촌 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지난 25일 전북 임실군 임실읍 금성리 치즈마을. 경기도 가평에 있는 청심국제고의 1학년 국내반 학생 20여 명이 치즈 체험장을 찾았다. 4~5명씩 팀을 이룬 학생들은 우유에 유산균을 넣어 응고시킨 커드(curd, 미완성 단계의 치즈)를 뜨거운 물에서 조물조물 반죽한 뒤 길게 뽑아 내는 스트레칭 작업을 했다. 학생들은 지름 2~3m까지 늘린 치즈를 “고소하다”며 경쟁적으로 손으로 뜯어먹기도 했다. 이어 옆 건물로 옮겨 쌀로 만든 도(빵)에 치즈를 두르고, 토마토소스와 양파·치즈·햄·옥수수 등을 얹어 오븐에 구워 내는 피자 만들기 실습을 했다.

 표영흔(16)양은 “평소 간식으로 즐겨 먹는 치즈·피자를 직접 만들어 보니 정말 신기하고 흥미롭다. 내가 만든 치즈를 가족에게도 맛보여 주고 싶다”며 한 조각을 따로 쌌다.

 임실 치즈마을은 전주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주변에 변변한 관광지 하나 없지만 사시사철 방문객이 몰린다. 평일엔 하루 200여 명, 주말이면 300~400명이 찾아온다. 체험 종류에 따라 1만8000~4만원을 받는 유료 프로그램에 지난해 5만7000여 명이 몰렸다. 이들 관광객이 뿌리고 간 돈은 16억원에 달한다. 농사 수입 외에 가구당 최소 500만~수천만원의 가외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인구 183명 가운데 65세 인구가 38%에 이르는 고령화된 시골마을치고는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

 치즈마을이 대박을 터뜨린 것은 벨기에 출신 지정환(81) 신부의 지도로 주민들이 1960년대부터 치즈 제조 노하우를 터득해 이를 체험관광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면서다. 농민들은 치즈·피자 만들기 외에도 경운기를 타고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을 누비고, 젖소·양 우유 주기 체험을 제공한다. 점심도 마을회관에서 치즈 돈가스를 먹는다. 치즈·요구르트를 만드는 공방도 2개나 생겼다.

 마을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주민도 늘고 있다. 최근 1~2년 새 5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이사를 왔다. 이들 중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일자리를 찾아온 외지인들도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2010년 마을에 들어 온 권유배(43·유가공업)씨는 “도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하고 흙을 만지며 생활하고 싶어 농촌으로 왔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치즈·요구르트 등 유제품 생산, 체험관광 등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거리 많아 다른 마을보다 젊은 층 주민이 서너 배 많다”고 덧붙였다. 다른 마을의 경우 65세 미만이 10~20%에 불과하지만 치즈마을은 60%를 웃돈다.

 임실 치즈마을의 성공 사례는 이제 농어촌 마을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 마을을 모델로 ‘색깔 있는 농어촌 마을’ 만들기 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마을마다 특색 있는 자원을 발굴해 자생력 있는 주민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임실의 성공사례가 전파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제2, 3의 ‘스타 농촌마을’ 후보가 줄을 이을 조짐이다.

 농식품부의 김인중 농어촌정책과장은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는 노쇠한 우리 농촌에 생기를 불어넣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2015년까지는 5000개의 색깔 있는 마을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지역경영학 전문가인 강형기 충북대 교수는 “농식품부가 그동안 펼쳐 온 40여 개의 농촌 사업들이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정책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려고 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며 “색깔 있는 농촌사업의 경우 먼저 사람을 키우고, 네트워크화한 뒤 사업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열매를 맺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색깔 있는 마을=마을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활용한 주민들의 일자리 만들기와 소득 증대, 삶의 질 향상이 목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에 활력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각 마을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과 문화·자연환경을 토대로 농어업형·유통가공형·도농교류형·생활기반형 등 4개 유형으로 나눠 진행한다. 중간 조직으로 현장 활동가를 육성하고 활력지원센터를 설립해 각 마을의 발전계획을 짜고 사업을 시행한다.

임실 치즈마을

▶위치 : 전북 임실군 임실읍 금성리 치즈마을
▶인구 : 83가구 183명(65세 이상 노인 69명, 38%)
▶수입원 : 벼농사, 고추, 낙농, 체험관광
▶방문객(2011년) : 5만7000여 명, 16억여원 수입
▶ 주요 프로그램 : 치즈·피자 만들기, 경운기 타고 논길 달리기, 초지 낙농체험
▶경지 면적 : 논 80㏊, 밭 80㏊, 임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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