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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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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친께서는 평생 진폐증과 심장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일본에 강제징용 가서 겪은 일은 언급을 피하셨어요.”

 25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재훈(66)씨의 목소리는 자주 떨렸다. 전날 대법원이 그의 아버지(2001년 작고한 박창환씨) 등 5명이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직후여서인 듯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11년간 법정다툼을 벌였다는 그는 “이번 판결이 꿈만 같다”고 했다. 고(故) 박창환씨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있었다. 미쓰비시 기계제작소로 끌려간 지 1년여가 됐을 때 이곳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고철 파편에 맞아 턱살이 떨어져나가는 중상을 입은 그는 한 달 뒤 밀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생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그는 우리나라 법원에 소송을 낸 지 1년 만인 2001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함께 소송을 냈던 나머지 4명도 지난 3월 정상화(당시 89세)씨를 마지막으로 모두 숨졌다. 박씨는 “이제야 그분들이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 수는 78만 명. 정부는 1974년 대일 민간인 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 대상자 신고를 받아 1977년 6월까지 사망자 8552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25억656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2005년 이후 행정안전부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신고된 피해자는 22만6583명이다. 일제강제동원생환자 유족모임 측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70% 이상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측 자료로 치면 22만여 명 중 생존자는 6만 명가량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생존자들에게 연간 8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유족모임의 김재천 대표는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일본 정부나 기업이 쉽게 이행할 리는 만무하다”며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직접 강제징용자들의 신상명부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조계에서는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들이 청구권을 상속받을 수 있지만 배상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갑유 변호사는 “당사자가 아닌 유족들은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고, 재산권 보상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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