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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한 편 쓰기 위해 천 번 넘게 연습…열정 쏟을 취미 있어 젊음 부럽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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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신한무복몽초선(身閑無復夢貂禪) 몸은 한가하고 더 이상 미녀가 꿈에 보이지 않지만 수신풍류재노년(須信風流在老年) 반드시 노년에 풍류를 즐겨야 한다고 믿네.

상명대 평생교육원 수강생 송현호씨가 충북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한다면 결코 젊음이 부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맞는 취미생활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상명대학교 평생교육원(원장 최상은)에서 서예를 배우고 있는 송현호(53·여)씨가 제37회 충북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나이에 미술대전 대상이라니….’ 송씨는 수상 소식을 접한 뒤 한동안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 함께 취미활동을 해 온 수강생들도 20여년 동안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송씨의 한결 같은 열정을 축하하며 기분 좋은 자극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충북미술대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입선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막상 대상을 수상하고 나니 기분 좋은 떨림이 가시지를 않네요.”(웃음)

상명대 평생교육원에서 서예를 배우고 있는 20여 명의 수강생 중에서도 송씨는 ‘연습벌레’로 통하고 있다. 이번 미술대전에는 목은(牧隱) 선생의 시 ‘즉사(卽事·그 자리에서)’를 초백서로 쓴 작품을 응모했는데 한편의 작품을 응모하기 위해 무려 1000여 회가 넘도록 먹을 갈고 붓을 놀려 연습을 했다.

“노년에도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 응모작으로 선택했어요.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공감이 되는 글이라 생각했죠.(웃음) 연습을 하는 내내 목은 선생의 시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행복한 마음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 갈 수 있었어요.”

송씨는 20여 년 전 충북의 한 평생교육원에서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문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문인화를 배울 당시 사군자 중 대나무를 치는 것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송씨는 이후 서예로 전환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군자로 국전 입상, 충북도전 입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송씨였지만 서예 전환 후 처음으로 응모한 작품이 대상작으로 선정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먹을 갈 때 풍기는 은은한 묵향과 하얀 화선지에 스미는 먹물의 부드러운 퍼짐은 서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마력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단순히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글을 써내려 갔지만 이제는 추천 작가를 넘어 초대 작가로 입문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연습해 반드시 꿈을 이루고 싶어요.”

십수년 전부터 송씨를 지도했다는 상명대 평생교육원 김상훈 강사도 송씨의 열정을 높이 사며 이번 수상을 당연한 결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강사는 “서예 한 작품을 써내려 가기 위해서는 가슴 속에 먼저 그 글에 대한 생각을 품어야 하고 품은 생각을 단번에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며 “평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연습에 몰두하는 연습벌레였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송씨는 “상명대 평생교육원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서실을 개방해 수강생들이 지정 서예 실습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또 대학 내 헬스클럽이나 스쿼시·수영장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전업 주부들이 취미생활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50살이 넘은 아줌마가 미술대전에서 큰 상을 받았지만 이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취미생활을 즐긴다면 더 큰 성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최진섭 기자

◆초백서(楚帛書)=1942년 호남성 장사자탄고 초묘에서 초백서가 출토됐다. 비단 한 가운데 글자가 쓰여져 있으며 사방에는 글자와 형상동물 등의 그림이 둘레에 그려져 있다. 서체는 조개처럼 원형의 납작한 자형을 갖추고 있는 특이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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