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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총리 헬기 태우고 인천 신도시 보여주며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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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버스를 타고 이라크를 돌아다니는데 맨 앞에 장갑차가 섰다. 우리 일행이 탄 차에는 총으로 무장한 경호요원이 동승했다. ‘여긴 정말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라크를 돌아다녔다.”

 2010년 2월 이라크를 돌아본 김현중(62) 한화건설 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몇몇 기업인들과 함께 경제사절단을 꾸려 이라크에 간 그는 김승연(60·사진) 한화그룹 회장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받고 있었다. “대형 전후 복구사업이 진행될 테니 관련 상황을 면밀히 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1970년대 중동 건설붐이 불었을 당시 태평양건설에서 해외사업담당 임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면서 중동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노하우를 쌓았다. 이라크 역시 예의주시하다 김현중 부회장을 밀사 격으로 보낸 것이다.

 당시 1차로 이라크를 둘러본 김 부회장은 귀국 후 “아직 구체화된 개발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전후 복구사업으로 건설시장이 크게 형성될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에 김 회장은 “이라크 정부 관계자와 꾸준히 접촉하며 길을 닦아 놔라”고 지시했다.

 한화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동쪽 25㎞ 지점인 베스미야 일대에 국민주택 10만 가구를 건설하는 9조원짜리 건설공사를 따낸 시초는 이렇게 시작됐다(본지 5월 24일자 1면). 한화건설은 다음 주 중 이라크 정부와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김 부회장이 이라크를 둘러보고 1년이 지난 지난해 4월, 이라크 정부가 신도시 입찰공고를 냈다. 한화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미 1년에 걸쳐 복구사업 준비를 해온 터였다. 한화는 신도시 청사진을 이라크 정부에 바로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그달 말 방한한 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헬리콥터에 띄워서는 한화건설이 옛 인천 화약공장 부지에 짓고 있는 1만6000가구 규모의 신도시 ‘인천 에코메트로’를 둘러보게 했다. “우리가 이라크 신도시 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총리한테 보여주라”는 김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알 아라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장 같은 유력 인사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헬기를 띄웠다. 결국 한화는 이라크 정부가 공고를 낸 지 한 달 만에 ‘한화와 함께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합의각서(MOA)를 맺게 됐다.

 한화 측은 “MOA를 맺었지만 본계약을 맺기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고 했다. MOA는 계약은커녕 양해각서(MOU)만큼도 구속력이 없어 이라크 정부가 마음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실제 이런 점을 노리고 이라크에 인접한 제3국의 건설업체가 이라크 정부에 끈질기게 구애를 한다는 정보까지 들어왔다.

 한화는 이에 대응해 100여 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그룹 TF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익명을 원한 한화의 한 임원은 “회장이 적극적으로 밀어줬기에 100여 명의 인력이 당장은 전혀 돈을 벌지 못하는 이라크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TF팀은 앞서 제시한 청사진을 더 구체화하는 한편으로 이라크 정부 측과 수시로 만나 친분을 쌓고 설득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한화는 본계약을 맺게 됐다. 그것도 당초 MOA상의 금액인 8조4000억원보다 늘어난 9조원짜리 계약이다. 다음 주 중 이라크 현지에서 열릴 본계약식에 김승연 회장이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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