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략에선 내가 한 수 위 … 이해찬·김한길 날 선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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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해찬 후보도 큰 선거를 지휘해본 경험이 많은데.”(라디오 진행자)

 “(본인은) 그렇게 주장을 하대요.”(김한길)

 “인정하지 않으세요?”(라디오 진행자)

 “뭐,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했었지요.”(김한길)

 23일 민주통합당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한길 후보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간의 문답이다. 이 후보의 선거 기획능력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 후보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초반 3연전을 끝낸 민주통합당 경선전이 이해찬·김한길 후보 간 양강구도로 좁혀지면서 양측 신경전의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양측의 긴장은 특히 ‘누가 더 유능한 선거전략가인지’를 따질 때 고조된다. 두 사람 모두 야권의 기획가를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도 두 사람의 재능을 높이 샀었다. 1997년 대선 때 이 후보는 대선기획부본부장, 김 후보는 방송대책부본부장으로 활약했다. 2002년 대선에서도 각각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기획본부장(이 후보)·미디어특별본부장(김 후보)을 맡았다.

 양측은 그러나 서로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는 듯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 “김 후보는 (선거캠프에서) 직급이 낮았다”, 김 후보 측은 “이 후보가 치른 선거치고 이긴 게 별로 없었다”는 식이다. 이런 라이벌 의식 때문에 두 사람은 경선 연설 대결에서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과 (95년 조순) 서울시장 선거 등 큰 선거 대부분을 제가 기획했다” “두 번의 민주정부를 창출한 기획자”라고 말했다. 김 후보도 “97년 대선 당시 언론이 뽑은 ‘3대 공신(功臣)’ 중 한 명” “두 번의 대선을 승리로 이끌고 세 번째 대선 승리를 이끌어낼 사람”이라고 맞받았다.

 김 후보는 21일 부산 경선에선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때 1차 협상에 이 후보와 제가 함께했지만 아쉽게도 협상 결과가 무효가 나면서 이 후보가 제외됐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 때문에 단일화 협상이 결렬될 뻔했다면서 은근히 이 후보를 자극한 것이다.

 당 안팎에선 24일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대전·충남, 경남으로 이어지는 주말 3연전이 둘의 판세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 후보는 28표 차로 김 후보를 간신히 앞선 1위다. 하지만 김 후보 측은 ‘이해찬 대세론’에 금이 갔다며 추격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무엇보다 손학규·정세균 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등 ‘비(非)문재인 후보군’의 측면 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후보 측은 특히 영남 출신 노무현계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이 대구·경북과 경남지역 경선을 도와주고 있는 데 고무돼 있다. 김 후보 측은 “주말을 거치면서 1위를 탈환하면 ‘김한길 대세론’이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전·충남에선 이 후보가 승리를 자신한다. 고향(충남 청양)을 끼고 있는 데다 노무현계인 안희정 충남지사 등의 측면지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충남지역의 유일한 3선 의원인 양승조 의원이 이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것도 이런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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