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내 기술은 최민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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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가 19일 태릉선수촌에서 잡기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조준호의 뒤로 보이는 남자 숙소 건물에는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김성룡 기자]

“제 기술은 민호 선배 거예요.”

 21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유도 66㎏급 국가대표 조준호(24·한국마사회)의 말이다. 그는 “내 유도에는 내 것이 없다”며 “여러 선배와 동료들의 좋은 점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기량도 늘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잡기는 김재범(81㎏급)을 보고 배웠고, 잡기 이후 움직임은 친구인 왕기춘(72㎏급)을 따라 했다고 한다.

 조준호가 가장 부족했던 부분은 기술이었다. 그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32·한국마사회)였다. 조준호는 “민호 선배의 기술은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비디오로 수백 번을 다시 보고 따라 했다”고 말했다. “준호한테 너무 많은 기술을 가르쳐 준 걸 후회한다”던 최민호의 농담이 절반은 진실인 셈이다.

 사실 조준호는 최민호의 그림자였다. 조준호는 5년 전부터 최민호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할 때도 태릉선수촌에서 최민호와 대표팀을 도왔다. 그러다 지난해 최민호가 66㎏급으로 체급을 올리면서 훈련 파트너에서 런던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겨루는 경쟁자가 됐다.

 두 남자의 대결 결과는 애매했다. 조준호는 최종선발전 결승과 최종 결승에서 거푸 최민호에게 완패했다. 모두가 최민호의 대표 선발을 예상했다. 조준호도 선배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그러나 대표 명단에는 조준호의 이름이 들어갔다. 대한유도회는 선발 점수에서 조준호(70점·세계 8위)가 최민호(66점)를 앞선 데다 최민호의 세계 랭킹(28위)이 낮아 본선 무대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조준호는 자신의 선발에 대해 최민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민호 선배와는 경기 전부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자고 했다”며 “솔직히 최종선발전에서 이기는 사람이 런던에 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정이 내려졌고, 조준호와 최민호 모두 이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민호는 전화를 걸어 후배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축하 인사를 건넸다.

 조준호는 왕기춘이나 김재범에 비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은 높지 않다. 큰 무대 경험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도 욕심이 있고, 그가 잘할 수 있는 ‘조준호식 유도’가 있다. ‘자신 있는 걸 꼽아 달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민호 선배처럼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진 않아요. 그래서 경기 시작할 때마다 항상 끝까지 가는 걸 생각해요. 연장전까지 염두에 두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뒤 경기에 들어가는 거죠. 이런 면에서는 민호 선배보다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에서 민호 선배 몫까지 더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5년간 두 선수가 함께했던 태릉에서 이제 조준호는 홀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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