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수사를 하는 건가 정치를 하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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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 관련 ‘뭉칫돈 의혹’을 발표했다가 슬쩍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의혹은 18일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가 직접 “노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불거졌다. 창원지검에서 변호사법 위반과 횡령 혐의로 노씨를 수사하던 중 해당 계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검찰은 “노씨와의 거래관계를 연관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 “계좌 추적에 시간이 걸린다” “뭉칫돈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자금의 흐름이 있다”는 등으로 말을 돌렸다.

 현장 기자조차 “현재로서는 검찰이 ‘자금관리인’으로 지목한 박영재씨의 동생 석재씨의 계좌를 확보해 계좌추적을 하고 있는 것만 사실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 차장검사가 ‘노씨의 뭉칫돈’ 발표 후 하도 여러 차례 말을 바꿔 검찰이 하는 얘기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검사가 한 입으로 두 말 한다”고 질타도 한다. 검찰 주변에서도 ‘발표 자체가 오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면서 항간에선 이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검찰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에 물타기를 하려 했다’는 등 정치적 해석마저 구구하게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 스스로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신뢰를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항간의 추측처럼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이는 양식 있는 검찰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또 수사를 통해 혐의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의혹’ 차원의 내용을 마구잡이로 흘리는 것은 혐의사실을 공표할 수 없다는 법을 스스로 어긴 것이기도 하다. 물론 해당 계좌가 노씨의 불법행위와 연루돼 있는지 등은 앞으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서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검찰은 입건된 피의자의 인권과 명예를 보호하는 것도 자신들의 무거운 책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또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신중하고 무겁게 입을 열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