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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47> 탄생 100주년 시인 5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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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정강현 기자

100년은 한 세기(世紀)다. 한 세기면, 세계는 큰 변혁을 겪는다. 지난 100년은 더욱 그랬다. 대규모 세계 전쟁이 두 차례나 있었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다. 문학은 변혁에 특히 민감한 예술이다. 지난 100년간 문학은 예민하게 아파했고, 예리하게 비판해왔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문인들에게 각별한 눈길이 가는 이유다. 2012년 탄생 100주년이 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살펴봤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2012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를 공동 개최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대표적인 한국 문인을 선정해 그들의 문학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1912년생으로 올해로 탄생 100년째가 되는 문인으로는 백석·설정식·이호우·정소파·김용호 등이 있다. 주최 측은 이들 작가의 문학작품이 지금 한국 문학과 사회에 던지는 의미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다음 달 30일에는 서울여대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리고, 9~10월 중엔 백석의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미술전이 열린다. 또 100주년 대상 작가 5명의 연보와 연구 서지를 묶은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지난 세기 한국 문단의 주요한 표지로서 위치해 온 이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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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시인·1912~95)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 등에서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했다. 문학동인이나 유파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의 시로 유명한 백석은 당대 시인으로는 드물게 친일시가 없는 시인이다. 분단 과정에서도 납북이나 월북과는 무관하게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북에 남은 시인이다. 재북·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 백석은 남한 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시가 소개됐음에도 한국인에게 널리 애송되는 시인이며, 많은 학자가 연구 대상으로 삼는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백석은 주로 1930년대 중·후반에 활동했다. 모국어의 재발견을 통해 특유의 미학을 일궈냈다는 평을 받는다. 독자들에게 알려진 백석의 시편은 100편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인과 시 연구자, 그리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백석의 시가 사랑받는 것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고형진 교수는 “백석 시의 매력은 세부적 사물의 명명과 호명으로 명암과 소리 감각의 미학적 완성을 꾀하는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색과 명암과 소리가 어우러지는 언어의 향연은 백석의 개별 작품에서 시의 형식을 완전히 지배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이끌기도 하면서 백석 시의 중요한 미적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백석은 재북 작가로 분류돼 남한 학계에선 잘 다뤄지지 않았다. 분단 이후 30년가량 잊혀졌던 시인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문학사 연구를 중심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백석 시의 ‘현재성’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동국대 김춘식 교수는 “백석의 시는 식민지 조건에서 탄생한 탈식민주의적 미적 모더니티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문학에서 식민지 체험을 부끄러운 과거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나 기억의 차원에서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이라고 평했다.

▶주요 작품: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 등

 
해방공간 당대 최고 엘리트의 선택과 실천

설정식(시인·1912~53)

 함경남도 단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운트유니언대학·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미군정청 공보처에서 여론국장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설정식의 문단 데뷔는 1932년이지만 활동 시기는 해방공간에 집중된다. 그의 문학 세계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해방공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보여주는 이념적 관조·선택·실천의 양태를 실감 있게 보여준다.

 미국 정통 유학파였던 그는 해방공간에서 미군정, 남로당과 조선문학가동맹·보도연맹·월북 등으로 이어지는 이중 행동을 보였는데, 53년 북한에서 ‘미제 스파이’란 죄명으로 이승엽·조일명·임화 등과 함께 처형됐다.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설정식의 시는 해방공간의 대표적인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굴곡진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주요 작품: 시집 『종』 『포도』 등

현대적 감각 과감한 수용 … 시조의 새 지평 열어

이호우(시조시인·1912~70)

경북 청도 출생. 밀양보통학교를 마치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신경쇠약으로 귀향했다. 해방 후에는 대구일보사를 경영했으며,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1940년 시조 ‘달밤’을 문예지 ‘문장’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46년에는 ‘죽순(竹筍)’ 동인으로 참여해 시조 창작운동을 전개했고, 68년 영남시조문학회를 창립하고 동인지 ‘낙강(洛江)’을 발행했다.

 전통적 시조의 양식적 특성을 존중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 데 힘썼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는 독특한 관념 세계를 개척했다. 그 때문에 이호우의 시조는 현대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성란 성균관대 강사는 “시조의 형식을 외형적 정형으로 보지 않고 내용적 정형으로 보았으며 시조에 담은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보고 이미지즘을 지향한 것이 이호우 시조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작품: ‘개화’ ‘휴화산’ ‘바위’ 등

일제·해방·전후 혼란기 시대와의 소통 기록

김용호(시인·1912~73)

경남 마산 출생.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시문학사’ 주간과 단국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1938년 ‘맥’ 동인으로 참가하며 ‘시그넬’ ‘역설’ 등의 시를 발표했고, 같은 해 장시 ‘낙동강’을 발표해 시단의 주목을 끌었다.

 김용호의 시에서는 공동체적 지향과 개체적 지향, 서사적 지향과 서정적 지향이 두루 그려진다. 시작 초기에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현실을 주로 그렸으며, 전쟁 발발 뒤인 50년대엔 민족정기를 담은 시를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60년대 이후엔 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생활시가 그 중심을 이뤘다. 전반적으로 “자기성찰적 관점과 더불어 동시대인과 소통하려는 길을 추구했다”는 평을 받는다.

 김신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김용호의 시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기·전쟁기·전후 등 혼란의 시기를 살다 간 개인의 체험적 기록이자 시대와의 소통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주요 작품: 시집 『낙동강』 『향연』 『남해찬가』 등

엄숙한 시어, 실험적 형식 … 살아있는 문단의 증인 

정소파(시조시인·1912~)

광주광역시 출생. 문단 최고령으로 탄생 100주년 문인 가운데 유일한 생존 문인이다. 송정공립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 문학과를 졸업했다. 1930년 열여덟 나이에 잡지 ‘개벽’에 시조 ‘별건곤’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57년 마흔다섯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됐다. 16년간 행정공무원을 지내고 여수중학 · 여수상고 · 전남여중고교 · 전남상고 · 광주남중 · 북성중학교 등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정소파는 근·현대문학사 초기에 출생해 현재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최고령 시인이다. 전통적 서정을 바탕으로 엄숙한 시어와 실험적 형식으로 언어의 진폭이 큰 시조 세계를 보여왔다.

 홍성란 성균관대 강사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격을 지닌 우리시대의 진정한 사표이지만 소파에 대한 선행 연구는 월평이나 계간평 또는 지역적 연고에 한정됐다. ‘살아 있는 한국 문단의 증인’이며 ‘문학사적 인물’ 에 걸맞은 범문단적 연구와 평가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00세 나이에도 매일 시조를 쓴다는 시인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0세가 됐다는 사실에 특이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늘 하던 대로 작품을 쓰고 읽고 싶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요 작품: 시조집 『산창일기』 『슬픈 조각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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