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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산 위탁관리 맡겨라” 프랑스 새 정부의 각료 윤리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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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계 입양아 출신 여성이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각료가 됐다고 해서 화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중소기업·혁신·디지털 경제담당 장관에 임명한 플뢰르 펠르랭(39) 스토리가 어제 각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이 선진국에서 장관이 된 첫 사례라고 흥분한 신문도 있었다. 우리가 키우지 못해 보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가 성공했다고 뿌리를 앞세워 대서특필하는 건지 솔직히 좀 낯간지럽다. 단순히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 갖고 그를 한국과 연결시키는 것은 견강부회다. 그는 뼛속까지 프랑스 사람이다.

 펠르랭은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제 나이보다 2년 앞서 16세에 합격했고, 최고 수재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그랑제콜을 세 군데나 다녔다. 이 사실을 강조해 보도하는 배경에는 핏줄을 은근히 과시하고 싶은 종족주의적 우월감이 느껴진다. 그가 한국에 살았더라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돋보이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의 문화적 포용력과 공정한 교육제도 아닐까.

 올랑드가 남녀동수 내각을 짰다는 걸 부각시키는 것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34명의 각료 중 꼭 절반인 17명이 여성이지만 외무·국방·내무·교육·재무 등 주요 장관은 모두 남성이다. 프랑스 여성들은 이 점이 불만이다. 전임자인 니콜라 사르코지도 15명의 장관 중 거의 절반인 7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북유럽의 여성 각료 비율은 50%를 넘긴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각료 윤리헌장’이다. 올랑드 정부의 각료들은 새로 제정된 이 헌장에 서명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시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관계가 존재할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윤리헌장은 철저한 공직 의식과 투명성, 불편부당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각료는 재임 중 금융자산을 공인 운용기관에 맡겨 위탁 관리토록 하고, 150유로(약 21만원) 이상의 선물은 국가자산에 귀속시키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체류 목적의 개인적 초대엔 일절 응해선 안 되고, 담당 업무와 관련된 영리·비영리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 수행과 직접 관련된 경비만 국가가 부담하고, 이동 시 경찰의 호위를 받지 않고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은밀히 이동한다는 규정도 있다.

 사르코지는 공사(公私) 구분을 못하고 국가 예산을 물쓰듯 하고, 각종 특혜에 연루된 의혹을 받았다. 재선에 실패한 데는 그 탓도 컸다. 올랑드가 주재한 각료회의는 첫 조치로 대통령과 장관 급여를 30% 삭감했다. 사르코지를 반면교사 삼아 대통령과 각료들부터 모범을 보이겠다는 취지다. 어느 정부든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올랑드 정부는 끝까지 각료 윤리헌장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