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 상상의 2001년, 현실과 맞지 않다

중앙일보

입력

''자의식 있는 HAL 9000 슈퍼컴퓨터「핼」, 우리는 너를 거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2월, 시계가 새해 첫날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때 매스컴은 1964년 아서 C. 클라크가 상상했던 2001년과 우리의 평범한 현실인 2001년 사이의 엄청난 불일치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일반인의 자각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2001년을 묘사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거의 모든 평론가들이 최고의 명화로 꼽고 있는 영화다. 연말의 연휴기간 동안 많은 소매업체들과 인터넷 소매업체들에서 이 영화의 DVD 및 VHS 버전은 모두 매진될 정도였다.

논란이 잠잠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라크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력을 발휘한 과격한 소설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크의 소설은 현실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1964년에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뉴욕의 첼시 호텔에 머무르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선견지명이 있는 기술자임을 입증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스푸트니크가 발사되기 훨씬 전에 기라성 같은 통신 위성들의 출현을 정확히 예견했다.

아니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작품에 대해 크게 떠들어댈 것이 없어 입다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큐브릭 감독 덕분에 클라크의 2001년에 대한 비전은 오늘날 실현되지 못한 밝은 미래로서 우리의 문화와 집단 정신에 깊이 뿌리내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크의 예측 가운데 잘못된 부분은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달의 상설 기지들은 어디 있는가? 거대한 우주 정거장은? 그리고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우주선과 태양계 밖의 우주공간 탐험을 위한 저온실은?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외경심을 자아내는 핼의 인공지능은 어디 갔는가 하는 점이다. 핼은 일리노이주 어배너에서 나온, 살인을 자주 저지르는 자의식 있는 HAL 9000 슈퍼컴퓨터로 토성(영화에서는 목성) 탐사의 모든 면을 통제했었다.

사실, 이런 기술의 대부분은 빈곤한 상상력이나 불완전한 인간 능력의 희생양은 아니었다. 이런 기술들은 예산 삭감과 변화하는 군사전략에 좌우됐다.

우리의 우주 한계가 냉전 상태의 변화에 따라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과정에서,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은 NASA 예산의 대부분을 잠식했으며 전략방어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즉 SDI는 천문학과 천체 물리학을 전자오락으로 변질시키는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기 이전에 클라크는 우주 탐사의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술들을 실현하려면 정부 지출에 대부분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아폴로 미션이 1970년대 초반에 중단된 이후, 얼마나 많은 것이 성취됐는가를 측정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예를 들어, 전체 아폴로 미션에 탑재됐던 것보다 더 많은 프로세싱 파워를 오늘날의 핸드헬드 컴퓨터에 압축시킨 것은 결코 보잘 것 없는 업적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 지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유기업 체제에서 경쟁하는 산업의 업적이었다.

사실 컴퓨터 과학은 일반적으로 정부 보조로 부화되지만 자유시장 경쟁이라는 호된 시련을 통해 가장 큰 도약을 이룩해왔다.

게다가 인터넷은 사기업에게 개방되기 전까지 대학 및 군대에서 사용하는 비교적 중요치 않은 도구였다. 6년 동안 인터넷은 클라크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강력한 세계적 신경체계로 성장했다.

70∼80년대의 변덕스런 정부 정책들이 크레이(Cray)나 싱킹 머신(Thinking Machines)같은 슈퍼컴퓨터 제조업체들의 파멸을 초래했지만, IBM이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처럼 실제 시장을 발판으로 삼은 기업들은 오늘날 뛰어난 슈퍼컴퓨터를 공급하고 있다. 이런 슈퍼컴퓨터들은 우리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구동된다.

그러나 정부 지출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수많은 신기술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GE, GM, IBM, MS의 재산을 모두 합친다해도 유인 우주선을 화성으로 쏘아 올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남아도는 국가 예산의 일부분만 사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부는 사기업이 돈이나 동기를 가지고 수행하는 연구보다 훨씬 더 흥미를 끄는 컴퓨터 과학 연구를 재정 지원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며, 경제의 불안정한 부분에 자그마한 안전망을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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