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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영화질주] '치킨 런'

중앙일보

입력

산타클로스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캐릭터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산타클로스의 넉넉한 표정은 우리를 푸근하게 만든다. 이처럼 캐릭터 상품은 사물의 형상을 과장하되 세상사의 팍팍한 인심을 달래준다.

영화의 캐릭터 전략도 이 점을 잊지 않는다. 볼살을 찌우고 머리를 동그랗게 약간의 가분수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곤 거북이도 공룡도, 심지어 쥐도 귀여운 내 새끼처럼 꾸미곤 한다.

그렇다고 그 누가 영화 '치킨 런' 의 닭이 미키 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황금알을 낳는 존재가 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실제로 '치킨 런' 의 캐릭터는 지난 크리스마스 최고의 상품이었다.)

닭은 새가 아니다. 닭은 일반적으로 머리가 나쁜 동물로 평판이 났고, 플라멩고처럼 황홀한 '롱다리' 로 구애의 댄스를 추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치킨 런' 에서는 이런 닭이 귀엽고, 이런 닭이 날아 다닌다.

제작사 아드만 스튜디오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닭을 캐릭터화해 무딘 찰흙에 영혼의 입김을 불어넣는 미켈란젤로적인 장인정신을 구현했다. 게다가 인간은 단 두 명, 그것도 쓸모없는 악한으로 설정하는 닭본주의(?) 입장을 취한다.

언제 치킨파이 기계 속의 구운 통닭이 될 줄 모르는 닭들은 닭장을 탈출하기 위해 땅굴을 파고 인간으로 변장도 해보고 심지어 독방에 갖혀서도 벽에다 야구공을 던진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 '대탈주' 에서 스티브 맥퀸이 했던 것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치킨 런' 은 닭장이야말로 거대한 포로수용소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겨드랑이에 깃털을 달지 못한 짐승 인간에게 '치킨 런' 의 포로수용소 같은 닭장은 그 옛날 그리스 남쪽에 있었던 다이달로스의 미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번 들어가면 구절양장의 캄캄한 길을 헤매다 마침내 정신이 먼저 침몰해간다는 다이달로스의 감옥 미궁. 그러나 이곳에 갇힌 이카로스는 아교로 새의 깃털을 붙여 마침내 미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마치 주인공인 진저가 암탉들과 함께 비행기를 만들어 '모두 함께' 날 수 있었던 것처럼.

진저는 "우리가 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야" 라고 말하는 암탉들에게 "그래도 백만분의 영은 아니잖아" 라고 화답한다.

바로 그 영이 아닌 진실. 머리를 짜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현실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꿈을 꾸는 것. 하늘을 날고서야 암탉들은 넓기만 하던〈치킨 런〉의 닭장이 한 순간에 실체를 드러내는 아주 작은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것 혹은 날려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가장 인간적인 일로 승화한다.

그러니 치킨파이 속의 날고 기는 무용담이 관객을 끌기 위한〈인디아나 존스〉의 활극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오랜 신화의 세계가 전달해주는 지혜다.

〈치킨 런〉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우리 같은' 닭들이 재현하는 이카로스의 신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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