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식년’ 즐기는 조용진·조선민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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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안식년’을 갖고 신혼처럼 지내고 있는 조용진?조선민씨 부부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10년 차 부부. 한눈에 봐도 서로 다른 두사람이다. 공부만 했을 것 같은 남자와 활달해 보이는 여자다. 처음 그들은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만났지만 서로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1년 후 잠깐의 끌림이 있었지만 바람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만난 지 4년 째 되는 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두사람. 결혼 후 자동차여행, 요리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사는 이들은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며 추억을 만들자’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2003년 첫 사표 쓰고 45개국 자동차 여행

 누구나 결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막상 함께 살아보면 현실은 다르다. 이들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남편 조용진(40)씨와 삼성카드에 다니던 부인 조선민(36)씨는 10년 전 결혼에 골인한 사내커플이다.

 남편은 ‘계획쟁이’였다. 노년까지 치밀하고 현실적인 생애설계를 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결혼 이후엔 핑크빛 일상이 마냥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에 눈뜨자 마자 전쟁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뛰어나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신혼의 일상.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연애할 때 보다 오히려 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어서 열심히 돈 벌어 집 넓히고 자식 낳아 기르고, 비로소 여행 할 여유가 생겼다 싶을 때는 이미 기력이 빠져버리는 시점일 것만 같았다”는 남편 조씨의 이야기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하던 부부는 결국 “평범한 인생의 경로를 거꾸로 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2003년 9월 부부는 나란히 사표를 냈다. 그리고 부었던 적금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45개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4개월여 간의 긴 여정이었다.

 그 다음해 부부는 맞벌이로 돌아왔지만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와 스트레스는 가중됐다. 2009년 결혼기념일에 짧은 여행을 떠난 부부는 ‘언젠가 결혼생활에 지치거나 전환점이 필요할 때 결혼 안식년을 가져보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해냈다. 아내 조씨는 “돈을 벌기 위해 상처와 스트레스 받으며 살기보다는, ‘함께하는 추억의 적립통장’을 만드는 게 더 우선이라고 의견을 또 모았다”고 했다. 다시 직장에 다닌 지 8년 만인 지난해, 두 사람은 두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칼럼 연재, 쇼핑몰 운영하며 함께 일상 즐겨

 결혼안식년을 시작한 뒤로 조씨 부부는 자신들을 ‘램블(ramble)부부’라고 이름붙였다. ‘램블’은 ‘산책’이란 뜻을 가졌는데, 산책하듯 천천히 살아보자는 취지였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다녔던 일들, 함께 만들어 먹은 요리의 레시피를 블로그(램블부부’s life story, http://blog.naver.com/autolian)에 올리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로서 요리를 같이 만들며 사랑을 돈독히 해왔던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또한 소중한 여행사진과 기록을 정리했다. 이들의 작업은 『퇴근 후 30분 요리』『함께하는 보통날』이라는 책으로도 결실을 보았다.

 이들 부부가 안식년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이라는 인생의 요소를 무엇보다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남편 조씨는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다 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며 “한강을 열심히 걷고 캔맥주를 ‘폭풍흡입’하며, 물집 난 서로의 발바닥 인증샷을 찍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고 말했다.

 부인 조씨는 “경제 대책 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부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며 “블로그운영이나 집필활동과 같이 일하는 시간에는 책임감을 갖고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현재 집필 활동, 칼럼 연재, 쇼핑몰 운영을 겸하면서 그들만의 ‘결혼 안식년’을 즐기고 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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