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의 조건 … 95%는 긍정적 생각, 5%는 신체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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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의사는 일반인보다 충격이 몇 배 더 크다고 한다. 의사가 환자가 됐다는 사실이 낯설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무능한 의사라는 자괴감까지 밀려와서란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극복하고 제2의 인생을 사는 의사들이 있다.

 홍영재(69) 박사는 서울 강남에서 잘나가는 산부인과 원장이었다.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했다. 그에게 2001년 대장암(3기)이 찾아왔다. 암은 신장까지 전이돼 있었다. 남은 삶이 2~3개월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베트남전 참전 때 그의 품에서 죽어가던 병사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암의 덫에 걸렸다고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6개월간 항암치료로 체중은 18㎏이나 빠졌고 온몸에 포진이 퍼졌다. ‘더 이상은 치료를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폐암 치료 도중 감기에 걸려 숨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암 때문이 아니라, 못 먹어서 면역력이 떨어지면 죽겠다 싶었다”며 “어릴 적 먹었던 청국장과 연두부를 먹으면서 기적적으로 기운을 냈다”고 말했다. 홍 박사는 요즘 전국 곳곳에서 건강한 삶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건강은 95%가 긍정적인 생각, 5%가 육체 관리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부부가 모두 암에 걸린 의사들도 있다. 최경숙(63·여) 서울 동서산부인과 원장과 남편 최병한(63·내과 전문의)씨다. 암은 아내를 먼저 찾아왔다. 1999년 후배의 권유에 이끌려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놀랍게도 X레이 사진에 암덩어리가 나타났다. 림프선을 타고 전이된 암은 왼쪽 유방을 앗아갔고 난소와 자궁까지 적출해야 했다.

 항암 치료 도중 구토와 실신이 계속됐다. 하지만 최 원장은 “항암 치료 덕분에 내 몸이 깨끗하게 청소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밝았다. 치료 후에도 병원을 계속 운영하며 ‘봉사하는 삶’에 더 깊이 뛰어들었다. 그는 아이티·필리핀 등 해외 재난지역과 국내 다문화가정·노숙자에 대한 의료봉사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엔 남편 최씨도 간암 수술을 받았다. 8년 전부터 중국에서 의료선교 중인 남편은 수술 뒤 한 달 만에 다시 봉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최 원장은 “우리는 암을 이기는 의사가 아니라 암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 다시 교육받은 의사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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