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무리한 사업을 벌려선 안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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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본분에 맞지 않는 무리한 사업을 벌린 게 화근이다!”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탄생한 저축은행이 본연의 업무는 뒷전인 채 인수합병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대형화·겸업화에 치중해 최근의 부실사태를 빚게 됐다는 지적이다.

 “무리한 사업을 벌린 게 화근”이란 지적은 맞지만 이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무리한 사업을 벌인 게 화근”으로 바루어야 한다. 일을 계획해 시작하거나 펼쳐 놓다는 뜻으로 쓰이는 동사는 ‘벌리다’가 아니라 ‘벌이다’이다. “일을 벌였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해라” “일부에서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이사회를 압박했다”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이 밖에 ‘벌이다’는 놀이판이나 노름판 따위를 차려 놓다,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다, 가게를 차리다, 전쟁이나 말다툼 등을 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벌리다’는 둘 사이 공간을 넓히거나 멀게 하다, 껍질 등을 열어젖혀 속의 것을 드러내다, 우므러진 것을 펴지거나 열리게 하다는 뜻의 동사다. “사람들은 벌인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등어 배를 벌여 내장을 꺼내고 소금을 뿌린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양팔을 벌여라”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벌린 입을’ ‘고등어 배를 벌려’ ‘양팔을 벌려라’로 고쳐야 맞다.

 두 단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일을 도모하려 시작하거나 널리 펼쳐 놓거나 늘어놓는 것은 ‘벌이다’, 어떤 모습을 변형하거나 여는 것은 ‘벌리다’를 써야 한다. 대체로 일·잔치·사업·조사·좌판·싸움·입씨름·논쟁 등에는 ‘벌이다’를, 간격·차이·손·양팔·양발·입·틈새 등에는 ‘벌리다’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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