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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성공이 한국의 자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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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한국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생각이 안 납니다. 어딘가 적혀 있는데 봐야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지난번 다른 인터뷰 때 권오복이라고 하셨는데.”

 “아! 그럼 그게 맞을 겁니다.”

 지난해 9월 파리의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장뱅상 플라세(44) 프랑스 상원의원이 주고받은 문답의 일부다. 대화는 프랑스어로 이뤄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7세 때 프랑스로 입양된 플라세 의원은 한국말을 못한다.

 상원의원 당선에 대한 기사나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특파원들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던 이날의 대화는 줄곧 포커스가 빗나갔다. 기자들은 그에게 유년의 기억을 물었다. 그는 한국에서 자랄 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면서 대신 프랑스 부모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기자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나 영화가 있느냐”고 질문하면 그는 “앞으로 관심을 가져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썰렁한 대답을 했다. 기자들은 한국과 관련된 뭔가를 듣고 싶어했지만 그는 소속 정당인 녹색당의 정치적 중요성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대화의 톱니는 계속 어긋났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 기자들의 갈증을 이해했는지 “매사에 적극적인 기질은 한국에서 물려받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제야 인터뷰 분위기가 밝아졌다. 다음날 신문 기사와 방송 리포트에는 이 말이 부각됐다.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 태생 입양인들을 가끔 만난다. 그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적법이나 국제법상으로 한국인이 아닌 게 맞다. 일부러 한국인과 거리를 두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한국에 대한 기억도, 각별한 애정도 없는데 자꾸 한국과 관련된 뭔가를 묻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없고, 자신은 순전히 프랑스인 또는 스웨덴인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외양은 동양인이지만 말과 행동은 100% 서구인이다. 어쩌면 일부러 자신을 키우지 못한(또는 않은) 부모와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에 더 철저히 현지인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날 플라세 의원처럼 유명 인사가 되면 한국 언론에 의해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의 당선으로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플뢰르 펠르랭(38)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생후 반 년 만에 입양됐다. 어떤 언론에선 그를 ‘입양 한국인’이라고 표현했다. 마치 한국인의 혈통이나 유전자의 우수성이 입증되기라도 한 것처럼 떠들썩하다.

 이들의 성공이 반갑고 기쁘다. 그런데 언론의 주목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보여온 입양인에 대한 관심의 정도와 아직도 한 해 1000명 가까이 해외로 입양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성공 입양인’에 대한 반짝 조명이 우리들의 얄팍한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