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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외국인 보유 주식·채권의 양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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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 주식은 400조원어치에 달한다. 시가총액(1125조원)의 35%다. 이 금액이면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시가총액 1~7위 대표 기업들의 지분을 모두 사들일 수 있다.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채권시장도 외국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5년여 전인 2006년 말까지만 해도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금액이 250조원을 넘어섰던 반면 외국인들의 국내채권 투자금액은 5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중 국채 투자액은 4조원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5년 사이 외국인들의 국내채권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현재 외국인들의 채권 보유잔액은 85조원을 넘어섰다. 외국인 보유채권의 97%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발행한 채권들이다. 4월 이후 외국인들의 채권투자가 둔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현재까지 4조원 넘게 증가했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국내채권, 특히 국채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 증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나라가 발행한 채권인 국채는 신용도에 따라 차입금리가 정해진다. 신용도가 가장 높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1.5%까지 하락했다. 반면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스페인의 국채금리는 6%, 그리스의 국채금리는 23%를 넘어섰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은 모두 독일과 비슷한 낮은 금리로 손쉽게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누적된 방만한 차입이 국가 재정을 악화시켜 유럽 재정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현재 독일과 같은 트리플A 등급 국가들의 국채금리는 위기 이전에 비해 오히려 더 낮아졌다. 반면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높은 금리에도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재정위기는 각 국가의 국채가 안전자산인지 위험자산인지 구분해주는 역할도 한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국채시장은 어땠을까.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국채를 15조원 넘게 사들였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4.5%에서 3.7%로 하락했다. 불과 3년여 전인 리먼 사태 당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리먼 사태 직후 8개월간 외국인들은 원화채권 보유잔액 51조원 중 16조원가량을 팔고 떠났다. 16조원의 절반은 국채, 나머지는 한국은행 발행채권이었다.

 유럽 재정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풍부한 해외유동성, 높은 재정건전성 등에 따라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유동성을 금융시장에 공급했고 이러한 자금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등지로 흘러 들어갔다. 특히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한국 국채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외국의 대형 채권펀드들도 한국 국채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국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 증가는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따른 반사적 수혜의 결과만은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국채 투자가 증가한 이유를 ‘재정건전성(strong balance sheet)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확충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2008년 말 이후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아시아 신흥국들과 한국 국채시장의 외국인 비중이 대부분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일본 국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은 소폭 증가에 그쳤다.

 향후 미국과 유럽의 유동성 공급이 마무리되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경우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 나갈지, 투자를 지속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견실한 기초체력을 유지한다면 언젠가 나타날 글로벌 유동성 축소 국면에서 부작용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채에 투자한 외국인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다. 채권자는 우량 채무자에게는 낮은 금리에도 기꺼이 자금을 빌려주려 한다. 그러나 신인도가 낮은 투자자에게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여건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자금을 회수한다.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기지 않도록 신뢰를 쌓아야 한다. 설사 우산을 빼앗기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비옷을 준비해야 한다. 탄탄한 국가 재정과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같은 경제 펀더멘털이 바로 비옷이다. 그리고 비옷이 없을 때 우산을 빼앗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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