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주주 전횡에 날개 달아준 미온적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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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가 속속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했다가 그제 구속된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백화점식 비리 혐의를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금융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융범죄 예방에 필요한 금융감독 체계와 법적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대부분 불법 대출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특히 김 회장의 경우 2001년부터 3년간 ‘출자자 대출 금지’ 규정을 어기고 37억여원을 대출받은 혐의(상호저축은행법 위반)로 2006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1심에서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한 뒤 2009년 2심인 광주고법 제주재판부는 벌금형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당시 재판부가 밝힌 양형(형량 결정) 이유는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은행의 경영정상화에 힘쓰고 있으며, 그 성과도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문제는 선고유예로 인해 김 회장이 저축은행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상호저축은행법이나 금융관련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는 경우 임원 자격을 박탈하도록 한 조항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이후 김 회장의 수천억원대 불법 대출·횡령 행각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법원의 온정주의가 사회와 경제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기수)는 증권·금융범죄 형량을 대폭 높이는 내용의 양형 기준을 다음 달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란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양형기준을 아무리 높이더라도 실제 재판을 맡은 판사가 ‘무관용(no tolerance)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판사들은 소중한 목돈을 날린 국민의 심정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