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제2의 ‘신촌 살인사건’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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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최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달군 ‘신촌 살인사건’. 전말은 이렇다. ‘지난달 30일 오후 9시쯤. 서울 신촌 번화가의 한 공원에서 대학생 김모(2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을 붙잡고 보니 이모(16)군, 홍모(15)양, 윤모(18)군 등 10대 3명과, 김씨의 전 여자친구 박모(21)씨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피해자 김씨와 처음 만난 사이였다. 이후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어울리다 말다툼 끝에 김씨를 살해했다. 그것도 흉기로 40여 차례 찔러…’. <본지 5월 4일자 19면>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김씨가 10대 피의자들과 실제 만난 건 3~4차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윤군은 이날 처음 만난 김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10대들은 경찰에서 “평소 (숨진) 김씨가 보낸 문자 메시지나 채팅 말투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다툼이 실제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른바 ‘현피’(인터넷 게임상 다툼이 현실에서 재현된 것으로 현실+Player Kill을 조합한 말)다.

 현피는 이제 흔한 사회 현상이 됐다. 올 3월엔 인터넷 게시판에서 모교를 욕했다는 이유로 김모(26)씨의 집을 찾아가 폭행한 구모(36)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2010년 9월엔 강모(28)씨 등 8명이 자신이 속한 게임 동호회에 욕을 했다는 이유로 인터넷 방송 게임 진행자 이모(24)씨를 방송 도중 집단 폭행했다.

 10대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5월엔 인터넷 게임을 하던 초등학생들이 채팅 창에서 욕설을 주고받다 10대10으로 패싸움을 벌였다. 인터넷 게시판에선 현피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나 ‘현피 뜨자’는 게시물·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엔 카카오톡을 도구로 활용한 학교폭력·왕따가 화제로 떠올랐다.

 기성세대에겐 다른 세상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신촌 살인사건 수사와 취재에 투입된 경찰과 취재기자들도 하나같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이웃 주민 김모(38)씨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쉽게 흉기를 드는 10대가 무섭다”고 했다. 독버섯처럼 퍼지는 ‘현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청소년의 인터넷 윤리·예절 교육이 시급하다. 전혀 여과되지 않는 인터넷 공간에의 지나친 몰입에는 주변의 경고도 필요하다. ‘이해할 수 없는’ 가상의 다툼이 언제 또 현실의 참극으로 번질지 몰라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