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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대기업·FTA 달라 민주·진보 통합 어렵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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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07면

조용철 기자

김진표(64·3선·사진)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대표적인 온건 협상파다. 지난해 5월부터 원내대표로서 제1 야당을 이끌었지만 강경론의 거친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정치 현실에서 역할 공간이 넓지 않았다. 민주당 강경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선 4·11 총선을 앞두고 ‘공천 불가 인사’로 지목됐다.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과정에서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4일 선출된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에게 바통을 넘긴 그를 경기도 수원 영통구의 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내대표를 마친 소감은.
“이명박 정부는 4년간 직권 상정으로 109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대통령은 똑똑한 몇 사람 데리고 효율적으로 하면 되지 무슨 쓸데없는 국회냐는 식이었다.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여야 강한 여당, 잘하는 여당인 것으로 착각했다. 야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져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걸 능사로 알았다. 이 탓에 우리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경멸받게 됐다. 오죽하면 안철수 현상이 생겼겠나. 진영 논리에 매몰돼 여야는 강(强) 대 강(强)으로 부딪쳤다. 힘들고 괴로울 땐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란 옛말을 떠올렸다. 원내대표가 협상을 안 하면 존재 이유가 뭔가. 그러나 대화와 타협을 하면 당내에선 협상파라고 욕을 해댔다. 힘들고 괴로웠다.”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1년 임기 채운 협상파 김진표 의원

-뭐가 문제였나.
“한·미 FTA 비준안 처리 때 나는 몸싸움 대신 성명서를 발표하고 퇴장하자는 쪽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 대책을 최대한 이끌어 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몸으로 막은 예는 없었다. 우리 당 의원 60명 이상이 동조했다. 하지만 민노당과 우리 당 강경파로부터 한나라당 2중대란 소리를 들었다. SNS에선 하루 수백 명으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했다. 야권연대 협상 중이어서 대응을 안 했더니 ‘진표 보살’로 불렸다. 우리 SNS는 잘못 가고 있다. 소수 특정 세력이 마녀사냥 식의 때려잡기를 한다. SNS에서 영웅 취급받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번 총선에서 떨어졌다.”

-한·미 FTA는 폐기돼야 하나.
“재협상해야 한다. 적어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는 폐기해야 한다.”

-ISD는 노무현 정부 때 인정한 것 아닌가.
“우선 FTA에 대한 우리 당의 기본 생각은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국토는 좁고 자원은 없다. 교역을 하지 않으면 잘살 수 없다. 대외개방 전략을 부인한 나라가 북한과 쿠바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해 4년 협상 끝에 겨우 이익의 균형을 맞췄다. ISD는 사법주권, 경제정책 주권과 연관된 문제여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자동차 분야의 이익이 엄청나서 개성공단, 제약사업 등과 함께 미국에 양보했다. 돈으로 치면 자동차와 부품산업 이익이 연간 10조원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 때 10조원 중 8조원어치를 양보했다. 그렇다면 ISD 정도는 충분히 폐기할 수 있었다. ISD는 호주도 폐기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물건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쨌든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활로는 거기서 찾아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는 왜 반대하나.
“노무현 정부 땐 평화의 섬 이미지에 맞게 민간 관광 유람선을 함께 정박할 해군기지를 만들자고 했다. 그런 조건으로 국회가 예산을 배정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그걸 전부 빼버리고 군항으로만 개발하니 저항이 생긴 것이다. 조건이 바뀌었다면 제주도민의 의사를 새로 물어야 한다.”

-야권연대가 총선에 도움이 됐나.
“양 측면이 있다. 수도권 20대 투표율이 전국 투표율보다 높은 것은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통합진보당의 정당 투표율은 10%대다. 다만 ‘김용민 효과’로 15석을 잃었다고 우리 당의 많은 정치인이 느끼고 있다. 경기도에서만 2% 미만으로 떨어진 후보가 5명이다. 김용민 효과가 없었다면 모두 당선됐을 거다.”

-야권연대에 따른 민주당의 좌클릭은 어떻게 생각하나.
“미숙했다고 본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시대 정신이다. 새누리당도 따라 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위원장의 새누리당이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과감하게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등 우리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베꼈다. 그때 우리가 한 걸음 더 나가서 재원 조달 능력을 포함한 구체적 예산정책과 세부 실천계획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4개 정치세력을 하나로 통합하고 당을 추스르는 데 급급했다.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당위성만 외치다 보니 구호와 목소리만 높아져 국민들에겐 지나치게 좌편향된 것으로 보여졌다. 거기에다 한·미 FTA 폐기 주장이 더해졌다. 치명적 잘못이다.”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을 어떻게 보나.
“노조는 노조원의 조합비로 운영한다. 하지만 정당은 국민 세금인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통합진보당은 국고보조금을 받는 공당이다. 공당이 비례대표를 뽑는 내부 경선을 하면서 엄청난 선거 부정과 부실이 있었다. 환골탈태하고 뼈를 깎는 자정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관계된 사람들과 그 결과로 비례대표가 된 사람이 모두 빠짐없이 책임져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민주당은 어떤 관계를 이어가야 하나.
“통합진보당이 철저하게 책임진 뒤 다시 태어나는 것을 전제로 야권 연대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

-대선에서도 야권연대가 이뤄질까.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남북 대치 상황에다 군사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정치에 색깔이 덧칠돼 있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보다 항상 수적으로 열세다. 진보가 합치지 않으면 보수와 대등한 세력을 가질 수 없다. 다만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의 완전한 통합은 어렵다. 정체성 차이가 있다. 첫째는 종북주의로 불리는 대북관이다. 북한에 대해 절대로 비판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3대 세습, 연평도 포격, 천안함 문제는 비판해야 한다. 국제법을 어기고 자기 정권의 안녕과 유지를 위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범죄집단이다. 둘째는 대기업관에 차이가 있다. 대기업에 대해선 경제 민주화의 규제가 필요하지만 법·제도의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시장경제 전체를 부인하면 안 된다. 재벌을 없애야 할 악의 존재로 생각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셋째는 FTA다. 모든 종류의 FTA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상당수 사람이 악이라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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