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파업…어느 중소기업인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국민.주택은행 파업 엿새째인 26일.

러시아에서 원사(原絲)를 수입, 가공수출하는 서울 성동구 M섬유 자금담당 간부 金모씨는 애타는 하루를 보냈다.

주거래 은행인 주택은행 파업으로 원사 수입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공장 가동 중단 위기에 처한 것.

TV에서 "몇몇 거점 점포는 영업한다" 는 안내를 듣고 오전 10시 주택은행 성수동 지점으로 달려간 金씨는 "외환 거래가 중단됐기 때문에 송금은 불가능하다" 는 창구직원의 답변을 들었다.

"국내산 원사라도 사야겠다" 고 생각한 그는 30분 동안 줄을 서 은행 잔고를 모두 자기앞 수표로 찾았다.

인근 S은행에서 주택은행 업무를 대행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다시 S은행으로 달려갔지만 "주택은행 수표는 현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 는 대답뿐이었다. 앞이 깜깜했다.

한 시간 넘게 차례를 기다려 자신의 계좌가 있는 K은행으로 수표를 송금하고 다시 K은행으로 뛰어가 현금을 인출한 시각이 오후 3시. 다섯 시간 가깝게 뛰어다녀 겨우 현금을 손에 쥔 것이다.

金씨는 "국내산 원사를 쓸 경우 일주일당 5천달러의 추가비용이 든다" 며 "파업이 길어지면 수천만원대의 손실이 생길 텐데 걱정이 태산" 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쯤 국민은행 청량리지점을 찾은 한 40대 사업가도 "파업 중이라 업무처리가 곤란하다" 는 은행측의 답변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물품대금 2백만엔을 송금받았는데 외국환 계좌에서 국내 계좌로 이체되지 않아 돈을 찾을 수가 없다" 며 "연말에 직원 월급을 줘야 하는데 큰일" 이라고 호소했다.

온도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尹모(48)씨는 "오늘이 어음결제일이라 당장 1천만원을 국민은행 계좌에서 찾아 타 은행으로 부쳐야 하는데 문 연 점포를 찾지 못했다" 고 막막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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