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쟁

방통위의 시청률 조사기구 설립 필요한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0면

새 환경 맞는 통계 공신력 확보 시급하다

변상규
호서대 공연영상학부 교수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시청률 조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시청률은 광고 단가 책정은 물론 정부 규제의 기준이 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률 통계의 공신력을 높이겠다”며 산하에 조사 전담 기구인 ‘미디어다양성정책원’(가칭)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방송 정책·규제 기관이 시청률까지 검증하려는 건 과욕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쪽 의견을 들어봤다.

인기드라마 방영 후 발표되는 시청률은 세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방송 산업의 중요한 지표다. 우선 방송광고 효과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방송사들의 광고단가 책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민영 미디어렙이 허용되면서 광고 시장에 경쟁이 도입돼 시청률의 경제적 의미가 더욱 커졌다. 방송사들도 시청자 반응을 파악해 프로그램 제작·편성에 반영하는 등 경영 효율화를 위한 지표로 이를 활용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시청률 조사는 민간 영역이었다. 민간 업체 두 곳이 시청률 조사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두 업체 간 시청률 순위가 다른 경우가 자주 있었고, 통계적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사례도 있었다. 이로 인해 방송사와 시청률 조사업체, 조사업체 상호 간에 분쟁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방송법 개정으로 여론 독과점 방지와 미디어 다양성 증진을 위해 특정 방송사업자의 시청점유율을 3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다(방송법 제69조의 2). 시청률이 방송 규제의 중요한 근거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엄밀하고 객관적이면서 신뢰성 있는 시청률 자료가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시청률조사검증협의회’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구속력이 없었다. 또 지상파 위주 검증에 대한 유료방송의 문제제기로 활동을 접은 상태다. 이에 2008년부터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연구사업으로 관련 조사 및 검증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방송, 주문형 비디오(다시 보기), 식당·터미널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시청, 스마트TV 등 다양한 방송 미디어가 출현해 방송 시청 패턴이 크게 바뀌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시청률 조사에 추가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인 시청이 증가함에 따라 가족단위 가구 시청률 조사에 적합한 현재의 조사 방식(피플미터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미디어다양성정책원 설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정책원은 시청률 조사와 검증을 전담하는 기구로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합한 조사를 위한 기술개발까지 담당할 예정이다. 표준화되고 안정적인 검증체계를 마련하고, 보다 공신력 있는 시청률 자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물론 방송 규제 기관이 관련 자료까지 생산함으로써 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부 기관에 의한 자료 생성은 조사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자료에 공신력을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같은 경제통계, 인구 추계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중요 통계자료를 한국은행과 통계청, 각 정부부처 등에서 생산·제공하고 있다. 방송사·광고업체·시청자 등 외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불만·개선 사항을 수집하고 적극 반영하는 등 부정적 인식을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앞으로도 방송 매체가 계속 늘어나고 스마트TV나 인터넷 방송 같은 방송통신 융합형 매체도 확산될 것이다. 그 결과 지상파와 케이블·위성, IPTV 등 네트워크별 규제 체계는 큰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매체가 대중에게 가지는 영향력, 즉 시청률이 규제 수준을 결정하는 궁극적 기준으로 떠오를 것이다. 고품질의 시청률 자료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변상규 호서대 공연영상학부 교수

민감한 시청률 조사, 독립 기구에 맡겨야

오창우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월 말 전체회의에서 시청점유율 전담기구인 ‘미디어다양성정책원’ 설립 계획을 보고했다. 정책원은 향후 시청점유율 검증, 미디어 이용행태 조사·분석, 미디어 다양성 교육사업, 여론 다양성 증진을 위한 조사·연구 사업 등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오는 12월 시청점유율 조사·검증 기구 설립법을 제정하고 내년에 기관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방통위는 현재 이미 산하에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것부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위원회는 방통위 정책으로부터 비롯되는 결과를 검증·확인하는 곳이다. 그러한 역할은 당연히 독립적 국가기구에서 담당해야 한다. 지금처럼 방통위원장이 구성한 위원회에서 이 같은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시청률 조사·검증을 담당할 정책원을 산하에 새로 두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물론 시청률 1% 차이가 엄청난 광고 수익 차이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보다 공신력 있는 자료를 내놓으려는 발상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영국 등지에서도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구가 시청률 조사를 전담한다. 하지만 이들 기구는 정책 기관으로부터 철저히 독립돼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 법안이 통과되면서 동시에 기존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대신할 새 공사 설립 근거가 마련되었다. 미디어렙법은 ‘1공영 다(多)민영 미디어렙’을 골자로 새 방송광고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5월 말 전에 설립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방송광고 균형발전을 위한 지원사업, 방송통신산업 진흥, 시청률 조사 및 검증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처럼 방송의 공공성 담보 기구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설립하는 만큼 이 기구로 하여금 시청률 조사와 검증 업무를 전담토록 하면 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방통위가 미디어렙법 통과 뒤 새로 정책원 설립안을 마련한 것은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유시장주의 아래서 미디어 정책의 핵심은 결국 권력으로부터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방통위가 정책도 만들고 결과도 검증한다면 그런 방통위는 누가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정책의 선(善)한 의도가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권력에 의해, 자본에 의해, 때로는 악의(惡意)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다. 방통위가 시청률 조사·검증을 독점할 경우 공영채널은 그렇다 쳐도 SBS를 비롯한 여타 채널에서 시청률 시비가 발생할 경우 권력의 방송침해라는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방통위가 방송·통신 부문의 입법기관이라면 사법기관의 역할은 다른 쪽에서 맡아야 한다. 방통위 산하에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둔 데 이어 미디어다양성정책원까지 신설하는 것은 권력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새 미디어렙법이 공정한 게임 룰을 무너뜨리고 방송의 공공성을 해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다. 지난 4년간 방통위와 방통위원장에 대한 각종 문제제기가 기우(杞憂)였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분명한 건 방송·통신 관련 정책의 결과 중 공공성의 실현과 거리가 먼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구성하는 위험은 피해 가야 한다.

오창우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