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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위해 반 친구 모두 수화 “네가 있어 더 많은 걸 배운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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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장애가 있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반 전체 아이들이 수화를 배우고 있어 화제다. 온양여고 2학년5반에 재학중인 염유리 양과 반 아이들이 그 주인공. 학교측에서도 2년 연속 같은 담임 교사를 배정하는 등 배려를 하고 있다.

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염유리(가운데)양이 박소라 담임교사와 학급 친구들(김재희?배유정?최은비양)과 함께 운동장 옆 화단에서 수화를 가르쳐주고 있다.

“친구들 배려·도움으로 진학의 꿈 가져”

1일 오후 1시 온양여고 운동장 옆 화단에서는 몇몇 학생들과 교사가 활짝 핀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봄이라 그런지 꽃이 예쁘게 폈네. 유리야 꽃이 예쁘다를 어떻게 표현해?”

“그건 양손을 펴서 얼굴에 대고 꽃을 만든 다음에 엄지 손가락을 볼에 갖다 대면 돼.(수화)”

최은비양이 유리양에게 수화를 물어보자 유리양은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대답해 준다. 은비양과 유리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그래서인지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한다. 은비양은 수화실력도 수준급이다. 요즘 반 친구들 모두가 유리양으로 인해 수화를 배우고 관심도 높아졌지만 아직 은비양처럼 의사소통을 잘하는 친구는 드물다.

“제 꿈은 시각디자이너에요. 친구들의 많은 배려와 도움으로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죠.(수화)”

유리양은 장래희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화로 이렇게 답했다. 요즘 유리 양은 학교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은비양을 비롯해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반 친구들과 자신을 잘 아는 박소라(27·여)담임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유리양을 위해 필기를 도와주고 각종 준비물도 챙겨주는 생활도우미 김재희양과 학습도우미 배유정양이 있다. 이들은 박 교사가 학기초 유리양을 배려하기 위해 지정해준 도우미들이다. 유리양이 빡빡한 고등학교 생활을 버텨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친구들 외에도 2학년 5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유리양에게 다가가 수화를 물어보고 함께 수다를 떨며 즐거워한다. 5반 학생들은 유리양 덕분에 기본적인 수화는 모두 할 줄 알게 됐다. 비록 청각장애는 있지만 이동수업을 갈 때조차 유리양의 곁에서 함께 이동해주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유리양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 유리양이 1학년 때부터 포기했었던 대학 진학에 대한 계획을 다시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제 유리양은 한 발 한 발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방과후에는 학원에 다니며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는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국사와 사회, 일본어 과목에 관심이 많이 가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노력도 하겠습니다.(수화)”

“유리 최선 다하는 모습 보며 도움 받아”

“수화를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배울 기회가 없어서 혼자 익히곤 했는데 지금은 유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는 다 수화로 표현할 수 있죠.”

유리의 생활 도우미 김재희양. 재희양은 요즘 수화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유리와 보내는 덕분에 수화를 배울 기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재희양은 생활도우미로서 유리양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다. 숙제가 있으면 알림장에 적어 유리양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자신이 챙겨 올 수 있는 준비물은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방과후에도 유리양과 핸드폰 문자로 수다를 떠는 등 우애를 다지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 재희양을 많이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수화도 그렇지만 유리가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고 저 역시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으로 유리가 학교생활에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생각입니다.”

 재희양은 “의사소통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른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덧붙이며 미소를 보였다. 이 같은 생각은 유리양의 학습도우미 배유정양도 마찬가지. 유정양 역시 “유리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 졌으면 좋겠다”며 “유리와 친해지고 나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2년 연속으로 유리의 담임을 맡고 있는 박 교사는 “유리가 학우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학교 내 행사 등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젠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도우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학급 학생들의 노력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성순 교장은 역시 “염유리 학생의 적응은 본교 교직원 및 학생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름’에 대해 인식하고, ‘다름’을 따뜻하게 감쌀 줄 아는 능력을 지닌 본교 구성원들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며 “이러한 통합 교육의 사례가 널리 퍼져 학교 폭력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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