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 美 흑인복서 'X-마스' 출소

중앙일보

입력

1991년 크리스마스를 1주일 앞둔 12월 18일. 뉴욕 흑인 빈민가에 살고 있던 제럴드 해리스(사진)의 가족은 축하 파티를 열었다. 며칠 전 제럴드가 유망 신인 프로복서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제럴드는 앞으로 수년 내 링 위에서 최고가 될 것 같았다. 스물네살이었던 그는 무하마드 알리 같은 뛰어난 복서가 되어 돈도 벌고 빈민가 흑인 청소년에게 꿈을 주고 싶었다.

파티가 한창이던 무렵 말썽꾼인 형 해럴드는 뉴욕의 칼바람 속에서 마약에 취해 자동차 강도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에 제럴드는 강도 혐의로 체포됐다. 강도 피해자들이 형 해럴드와 얼굴과 체격이 비슷한 제럴드를 범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제럴드는 알리바이를 밝혔으나 "흑인 복싱 선수는 강도짓을 할 가능성이 크다" 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럴드는 재판 도중 형이 범인인 것을 알았지만 전과가 많아 가중처벌될 형을 신고할 수 없었다. 제럴드는 9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최고 18년 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형 해럴드는 억울하게 수감된 동생을 생각하면서 몇차례 법정에서 자백하려 했으나 용기가 없었다. 고뇌에 빠진 해럴드는 마약에 빠지기 시작했고, 동생이 수감된 지 한달 뒤 마약 범죄로 25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럴드는 형을 용서했다.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감옥 밖에서 나누지 못했던 형제애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난 8년 동안 캐럴을 들을 때마다 괴로워하던 해럴드는 결국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 제럴드는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제럴드는 감옥에서 20대를 보내고 이제 33세가 되었지만 "훌륭한 복서가 돼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형에게 내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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