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며 잡은 ‘중국 해적’ 증거 없어 풀려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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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원들이 서해어업관리단 어업지도선의 단속에 저항하면서 휘둘렀던 흉기들. [목포=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우리 단속요원들에게 해적처럼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던 불법조업 중국 선원들이 대부분 풀려났다. 낡은 배와 채증 전담인력 부족 탓에 폭력행위에 대한 증거를 전혀 수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남 목포해양경찰서는 2일 우리 측 단속요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로 중국 절옥어운호의 선장 왕모(36)씨와 항해사인 왕모(29)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함께 긴급 체포됐던 선원 7명은 지난 1일 모두 석방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5월 1일자 22면, 2일자 4면, >

 해경에 따르면 선장 왕씨 등 2명은 범행을 자백해 구속이 가능했다. 그러나 다른 선원들은 “단속 당시 선장의 지시에 따라 선실에만 있었다”는 진술을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목포해경의 문현식 외사계장은 “적극적으로 폭력행위를 처벌하고 싶었지만 중국 선원들이 우리 단속요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이 전혀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풀려난 선원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에 머물고 있다.

 사건 당시 단속선박에서 채증 업무를 담당한 사람은 서해어업관리단의 화정우(32)씨였다. 그는 채증을 위해 디지털카메라 한 대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불법조업 어선 위에서 중국 선원들과 격투를 벌이다 4.5m 아래 밤바다로 추락했다. 게다가 우리 측 단속선이 낡은 탓에 중국 어선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해 서치라이트(조명)도 비춰 주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단속이 이뤄져 단속요원들도 중국 선원들의 얼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증인은 물론 폭행 영상이나 사진 한 장도 남을 수 없었다.

 선원들이 대부분 풀려났다는 소식에 서해어업관리단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관리단의 김정수(44)씨는 “배 안이 너무 어둡고 상황도 급박해 정확히 몇 명의 선원이 가담했는지 확인하지 못한 게 너무 분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리단 관계자는 “해경처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채증요원을 두고 단속선박과 채증장비도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작 했더라면 이런 황당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관리단이 보유한 채증장비는 60대의 디지털카메라가 전부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 디지털카메라여서 돌발적인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또 중국 선원들과 격투를 벌이게 되면 채증을 맡은 요원도 함께 단속에 나서야 한다. 야간에 위급 시 사용할 조명탄도 없다.

 관리단의 권용철 어업지도과장은 “돌발상황에서도 채증할 수 있도록 가슴에 부착하는 카메라를 도입하는 등 장비를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신안=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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