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일하면 연금 삭감, 고령화 시대 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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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선임기자

국민연금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돕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강하다. 20년 가입하면 최저보험료(월 2만여원)를 낸 사람은 불입액의 11배, 최고(월 34만원)로 낸 사람은 1.8배를 연금으로 받는다. 저소득층이 훨씬 유리하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기능이 불입한 보험료에 맞게 약정한 연금액을 지급함으로써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60~64세 고령자가 월 189만원 이상 벌 경우 연금이 50~10% 깎인다는 사실(본지 5월 2일자 12면)이 알려지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한 연금 가입자는 “노후를 대비해 평생 꼬박꼬박 연금을 냈는데 이걸 삭감하다니, 이게 과연 국민을 위한 정책이냐”고 분개했다. 다른 가입자는 “연금은 연금이고, 노력해서 버는 건 자기 능력인데 왜 연금과 근로소득을 연계해서 연금을 깎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황당해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한 간부도 “이런 제도가 있었느냐”고 의아해할 정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민연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대의 적(敵)은 국민 불신과 ‘용돈연금’이라는 비판이다. 현재 연금 수령자 305만 명의 평균 연금은 월 28만6000원이다. 이 중 20년 꼬박 부은 8만 명도 80만원밖에 안 된다.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최근 7000여 명을 조사했더니 은퇴 후 희망 소득이 월 229만원이었다. 국민연금이 여기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런 마당에 일한다고 용돈연금을 또 깎으니 일할 맛이 날 리가 없다. 고령화 문제는 세계의 공통 과제다. 고령자들이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게 유도하는 게 최선의 대책이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미국·오스트리아·포르투갈이 일하는 고령자의 연금을 깎는 제도를 없앴다. 프랑스·덴마크·스페인은 삭감을 완화했다.

 삭감제도를 없애면 좋겠지만 재정 악화가 걱정된다면 순차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에 맞다. 한국은 연금 수령 개시 연령(60세)이 내년에 61세가 되고 5년마다 한 살씩 늦어져 2033년에 65세가 된다. 여기에 맞춰 2033년까지 순차적으로 연금 삭감제도를 없애면 된다. 이리 해도 재정 악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복지부 자료).

 정부가 재정을 조금 아끼려다 불신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지 걱정이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사회·경제 여건 변화를 감안해 제도와 재정을 손보게 돼 있다. 마침 내년이 그 해다. 연금 삭감제도를 올려놓고 개선안을 찾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