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아르헨티나 또 IMF 구제금융

중앙일보

입력

아르헨티나 경제가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대로 두면 내년에 국가 전체가 부도날 상황이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관들이 4백억달러를 긴급 수혈키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도 아르헨티나 경제는 난제 투성이다. 1천2백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비롯해 수출 부진.실업자 급증.정치 스캔들 등 산적한 문제가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나〓물가를 잡기 위해 무리하게 환율을 고정시킨 게 화근이 됐다. 아르헨티나는 1991년 미 달러화와 자국의 페소화간 교환비율을 1대1로 고정시켰다. 이는 80년대 말 5천%에 달하는 천문학적 인플레를 잡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고정 환율제는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외국인 투자를 몰아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아르헨티나의 수출품 가격도 덩달아 비싸졌다.

또 달러로 계산한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임금이 이웃 브라질에 비해 훨씬 비싸지면서 아르헨티나에 진출했던 다국적 기업들이 브라질로 대거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고정 환율제를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 물가가 급등하고 외채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경제가 송두리째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정치 스캔들과 실정으로 페르난두 델라루아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IMF와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세금을 인상한 결과 서민층이 정권에 등을 돌렸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동법 개정 방침은 총파업 등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다 90년대 초반 이후 IMF체제가 계속되면서 국민의 도덕적 해이감도 커 경제개혁에 관심이 없는 것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와 노조가 개혁에 대한 피해를 우려, 개혁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 현 경제 상황〓엄청난 규모의 외채가 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큰 부담이다.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11월 말 현재 1천2백35억달러로 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수출은 극히 부진해 올 경상수지 적자가 1백33억달러나 될 전망이다. 혼자 힘으로는 빚을 갚을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당연히 경기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마이너스 3%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1% 미만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실업률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인 15.4%까지 치솟으면서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재정적자는 올초에 전망했던 47억달러를 훨씬 넘는 65억달러에 달해 정부 재정이 사실상 바닥났다.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최근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떨어뜨렸으며, 무디스도 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주가는 연초에 비해 26%나 하락했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금융시장도 극심한 불안을 보이고 있다.

◇ 향후 전망은〓IMF 등의 자금지원은 고통을 잠깐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병' 은 여전히 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외적으로는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고 세계경제도 덩달아 침체조짐을 보이고 있는 게 첫째 원인이다.

여기에다 이 나라 주요수출품인 곡류의 국제가격이 형편없이 하락해 국제수지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JP 모건의 펀드매니저인 마이클 쳄벌리스트는 "위기의 본질은 일시적인 현금 부족이 아니라 빚을 갚을 능력을 아예 상실한 것" 이라며 "더구나 지원금액이 당장 갚을 돈을 약간 넘는 정도이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고 주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