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 없이 202년째 이어온 푸조 가문 경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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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24면

푸조의 뿌리는 철강이다. 1810년 장 프레데리크 푸조와 장 피에르 푸조 형제는 집안 소유의 풍차를 개조해 강판을 제작했다. 주로 톱날ㆍ시계에 들어가는 스프링이었다. 올해로 202년째 이어지는 푸조 가족 경영의 출발이다. 9년 뒤 ‘푸조’라는 상표를 특허 출원했다. 이후 커피분쇄기ㆍ믹서ㆍ재봉틀ㆍ세탁기 등 돈 되는 내구생활재는 다 만들었다. 더욱 유명해진 건 후추 분쇄기 덕분이다. 한 개에 5만원 안팎인 제품이 연간 500만 개 이상 팔릴 만큼 이 분야에선 최고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인정받는다.

푸조그룹의 자동차 개척자 아르망 푸조

자동차는 창업자의 손자 아르망 푸조(사진 왼쪽)가 시작했다. 1880년대 아르망은 영국에 유학하면서 자동차가 곧 뜰 것임을 예견했다. 먼저 자전거를 만들다가 집안 어른을 설득해 자동차에 손댔다. 1889년 길이 2.5m, 무게 250㎏에 앞뒤 좌석이 마주 보는 4인승 3륜차를 만들어 프랑스 파리 세계박람회에 전시했다. 푸조 1호 차다. 벤츠의 세계 첫 가솔린 차보다 불과 3년 뒤졌다. 2기통 2.3마력 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로 달렸다.

푸조의 창업 과정은 일본 도요타와 흡사하다. 방적기가 본업이던 도요타도 창업자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가 1920년대 미국 여행 중 자동차가 미래 산업임을 절감하고 37년 자동차를 시작했다.

푸조는 기술을 축적해 1896년 자체 엔진을 개발했다. 자동차를 본격 생산하기 위해 아르망은 동생·조카와 힘을 합쳐 스위스ㆍ독일 접경인 소쇼(Sochaux)에 푸조자동차를 설립했다. 소쇼에는 지금도 자동차박물관을 비롯해 초기 생산공장이 보존돼 있다.

푸조 가문의 창업정신은 ‘자기 것 떼어내 분사하지 않고, 능력이 되는 자손만 경영에 참여케 한다’로 요약된다. 지금도 30% 주식(의결권 46%)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고경영자(CEO)는 전문경영인이 맡지만 후손 중 서너 명이 역대로 경영에 참여해 왔다. 사업을 쪼개 분가한 적은 없었다. 창업자 7대손인 티에리 푸조(57)는 이사회 의장이고 동생 자디에 푸조(45·사진 오른쪽)는 상품 담당 부사장이다. 누나도 의사회 멤버다. 의사결정 방식이 ‘톱-다운’이라 위기 때 대응이 빠르다.

프랑스 언론은 2세기 넘게 오너 경영이 별 탈 없이 이어진 비결로 창업 일가의 도덕성을 꼽는다. 유산 싸움이나 비자금 같은 물의를 빚은 적이 없다. 또 위기 때 푸조 패밀리가 전면에 등장해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증자를 통해 빈 곳간을 채워 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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