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불로 화인 찍는 한국화 … 수묵화 메카 중국을 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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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798 예술의 거리 조이아트 갤러리에서 이길우 작가가 자신의 화인(火印) 수묵화 작품 ‘무희자연(舞姬自然)’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중국 수묵화에는 없는 한국화의 독창성이 놀랍다.”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 예술감독 출신인 미술 평론가 황두(黃篤)는 한지에 향불을 찍어 한국적 수묵화를 표현하는 이길우(45·중앙대 한국화과 교수) 작가의 작품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의 주요매체들도 ‘독특한 기법으로 동양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작품’이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타들어가는 향불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향불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살짝 그을려 수묵화의 농담(濃淡) 같은 느낌을 뽑아낸다. 무수한 구멍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지며 한국화의 바위와 폭포를 그려내는 것이다. 지난 21일 베이징 예술특구인 798 예술의 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조이아트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는 이 작가를 만났다.

 - 화인(火印)으로 수묵화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 특이하다.

 “수묵화의 붓터치를 변용했을 뿐이다. 수묵화가 작품의 바탕이자 정체성이다.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면 기법에서도 끊임 없이 참신함을 추구해야 한다.”

 - 한눈에 봐도 작업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향은 자신을 태워 존재를 드러낸다. 그런 향으로 하는 창작이 고통스럽지 않으면 왠지 죄스럽다. 경기도 신갈에서 속옷 가게를 하던 아내와 가족의 헌신을 생각하며 묵묵히 점을 찍었다. 작품 하나당 6만 개의 점이 필요하다. 향을 너무 오래 대고 있어도 안 되고 너무 빨리 떼도 안 된다. 수없이 실패하다보니 이젠 향 태우는 노하우가 생겼다. 조용조용히 얘기하듯 몰입하다 보면 대개 신체적 고통도, 피로도 무감각해지곤 한다.”

 - 중국은 수묵화의 원조인데 부담은 없었나.

 “수묵화의 메카인 중국에 한국화를 갖고 오는 마음은 비장할 수 밖에 없다. 양이나 질적으로 수묵화의 전통이 우세한 중국에서 통하려면 이들이 하지 않은 독창적인 걸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중국 미술경매에선 수묵화가 최고가 대접을 받는데.

 “까다로운 중국인들의 안목에 우리 한국화가 자리 잡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작가들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응용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창의성이 나올 수 없다. 중국을 뛰어넘기 위해선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고민하면서 독창적 영역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크리에이티브로 무장하면 동양화의 만리장성도 넘을 수 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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