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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의사 임동규의 ‘자연치유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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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규 원장(왼쪽)이 요양원 앞 시금치 밭에서 이 병원에 요양 중인 하덕남 할머니(97세) 등 입원 환자들과 함께 밭을 매고 있다. 밭매기는 요양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임 원장은 밭일은 손발을 움직이고 한 곳에만 집중하게 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에서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지리산 하동 마을은 봄내음이 가득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지리산자연요양병원(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들어서니 생활한복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사람이 악수를 건넨다. 최근 『내 몸이 최고의 의사다(에디터 출판사)』라는 책을 낸 임동규(54)원장이다. 그의 책 부제는 ‘감기부터 암까지 병원 안 가고 낫는 법’이다. 오직 내 몸의 자연치유력만이 질병을 근원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환자를 치료해야 먹고 사는 의학도가 현대의학을 전면으로 부정한다? 귀촌 8년 째인 그는 예나 지금이나 흔한 두통약·감기약은 물론, 봉합 수술 뒤 항생제를 사용을 거부한다. 심지어 백내장 수술 뒤에 사용하는 안약도 마다했다. 자연치유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산골로 내려온 그의 삶이 궁금했다.

연세대원주의대를 졸업한 임 원장은 토박이 서울산(産)이다. 하루 두세 시간도 못 자는 인턴과 레지던트, 그리고 이어진 개원 시절의 삶은 팍팍하게 돌아갔다. 그럴수록 술과 담배, 그리고 기름진 고기를 즐겼다. 암이나 심장병처럼 심각한 병은 없었지만 항상 어딘가 불편하고 괴로웠다. 고혈압·고지혈증·만성위염·간염에 조금만 잘못 먹어도 설사를 하고 알레르기 피부염이 생겼다. 변비와 치질로 화장실 가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대장용종과 지방간도 발견돼 암에 걸리진 않았을까 조바심을 치게 했다.

몸도 비대했다. 167㎝에 몸무게는 74㎏을 넘어섰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약을 처방해 먹었지만 끊으면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다 자연치유와 채식, 그리고 명상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을 접했다. 모든 질병은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됐고, 삶의 태도와 습관을 바꿔야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병원과 약은 일시적인 증상을 가라앉히는 임시방편이며, 약과 병원에 의존하지 않을수록 자연치유력이 커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자연치유의 핵심은 내 몸 안의 자연치유력, 즉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약은 물론 담배와 술을 끊고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세 끼 현미밥과 채식을 실천했다. 고기는 물론 우유·계란, 국물을 낼 때 사용하던 멸치까지 끊었다. 엘리베이터보단 계단을 이용하고, 햇빛을 보며 걷는 시간을 늘렸다.

살은 급격히 빠졌다. 한 달 만에 10㎏, 3개월 만에 17㎏이 줄었다. 의학적으로 배운 지식이 있어 덜컥 겁이 났다. 암이 생겨 이렇게 빠졌나 싶어 온갖 검사를 다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오히려 중성지방·혈당·고혈압 등 모든 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좋아졌다.

몸으로 자연치유법을 체득하자 환자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끓어올랐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에게 “약 대신 현미밥을 드시고 채식하세요. 많이 움직이세요.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마음을 비우세요”라고 권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육식·폭식을 하고, 운동은 안 하면서 약에만 매달렸다. 임 원장은 “생활개선 없이 약에만 매달리면 병은 더 깊어진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는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개원 8년쯤 되던 2004년, 오랜 고민 끝에 도시생활을 정리했다. 시골에서 약 없이, 자연치유력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인이 살고 있던 지리산 산골마을로 들어가 한 쪽에 손수 황토를 바른 통나무집을 지었다. 감 농사를 지으며 살기를 7년. 신기하게도 만성질환이 깨끗이 사라졌다. 대장 용종이나 지방간도 자취를 감췄다. 괴롭히던 피부병과 치질도 없어졌다. 몸엔 근육이 붙었고 정신도 맑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인근에서 요양병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임 원장이 그리는 병원 치료 원칙은 ‘자연스러움’이다. 임 원장은 “칼에 베이면 아무것도 안 발랐을 때 오히려 상처가 잘 아문다. 그런 자연치유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세포가 스스로 몸을 치유하도록 한다. 당뇨병·고혈압은 물론 암까지 낫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이고, 실제 그런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따로 받는 치료는 없다. 다만 세 끼 현미밥 채식을 지키고, 황토바닥에서 자며, 요가와 명상, 풍욕(風浴)시간을 갖는다. 2~3시간 밭을 가꾸며, 숲길 산책도 한다. 노래·웃음·한방 뜸치료도 한다. 임 원장은 “이런 생활요법이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치유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요양병원에 있던 환자 대다수는 웃음이 맑고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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