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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장관 릴레이 인터뷰 ③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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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평소 ‘2.7%론’을 역설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40%인 쇠고기 관세가 15년에 걸쳐 사라지기 때문에 매년 2.7%포인트씩만 한우 경쟁력을 키우면 FTA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안성식 기자]

3일 강원도 횡성 서원농협, 10일 경기도 고양 딸기 작목반, 24일 충남 논산 돼지농장, 31일 경북 경산 버섯농장.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지난달 토요일 일정이다. 거의 매주 이어진 강행군에 수행 비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예순넷 나이가 무색한 현장 농정의 이유를 그는 “농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부가 다 맞을 순 없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그는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농업은 안 된다. 원칙과 정도에서 벗어나는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이것저것 지원한다는 식의 포퓰리즘 공약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럼 어떤 공약은 되는가.

 “무조건 도와준다가 아니라 단 한 푼이라도 경쟁력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

 -여당의 협조 요청이 거셀 텐데.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러나 ‘농업 경쟁력 강화’는 하루 이틀 된 농업 정책 구호가 아니다. 역대 장관들의 ‘고정 곡’이기도 하다.

 -경쟁력 강화는 무엇으로 하나.

 “토지 이용형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 한국 농가의 호당 경작 면적이 1.46㏊, 미국이 187㏊, 프랑스가 56㏊다. 자본·기술 집약적인 농업만이 살 길이다. 시설 원예와 수산물 양식이 대표적이다. 그래야 수출도 한다. 농업도 내수만 가지고선 살 수 없다.”

  -가능한 일인가.

 “우리나라 경상도만 한 크기의 땅을 가진 네덜란드가 어떻게 선진농업국이 됐겠느냐.”

 -그러려면 돈·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농어업 연구개발비 지원 예산이 올해 9089억원이다. 2020년까지 3조9000억원으로 늘린다. 시설 현대화를 위한 자본은 정부가 지원한다.”

 -자금 지원이야 매번 하는 것 아닌가.

 “방식을 확 바꿨다. 과거에는 정부가 보조금을 농가에 직접 줘 온실도 짓고, 농업시설도 개선했다. 조건이 붙지만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보조금은 없다. 모두 융자로만 준다. 연 1% 금리에 3년 거치, 7년 상환이다.”

 -직접 보조와 융자가 무슨 차이가 있나.

 “열심히 벌어서 갚으라는 것이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 누가 자기가 갚아야 할 돈을 함부로 쓰겠나.”

 -새는 돈 단속만으로는 부족하다.

 “융자 방식은 적은 돈으로 많은 농민을 단기간에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농업 시설 현대화 지원금이 2450억원이었다. 수요 조사를 해보니 10조원은 필요하더라. 매년 2450억원씩 지원하면 40년이 지나도 안 된다. 저리 융자를 하면, 정부가 금리 차이만큼만 지원하면 되니까 적은 돈으로 많은 농민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정부는 농업에 145조원을 지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전 대책은 10년간 54조원이다. 그러나 매번 허투루 썼다는 논란이 있었다. 서 장관은 “사업자 선정 등 사전 단계부터 점검을 강화하고, 외부 기관의 사후 점검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도 있다. 농식품 가격이다.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식품부는 17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킹이 제시한 ‘킹의 법칙’을 든다. 다른 물품과 달리 농식품 가격은 수확이 조금만 적거나 수요가 조금만 늘어도 급격히 오르내린다는 뜻이다. 문제는 또 있다. 농산물 가격이 내리면 소비자는 좋지만 농민은 아우성이다.

 -소비자 가격이 먼저냐, 농가 소득이 우선이냐.

 “양쪽이 모두 수용 가능한 적정선이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선이 적정 가격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러나 농산물 가격이 높다고 농민에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싼 외국산에 맛들이면 소비자가 우리 농산물을 외면할 것이다. 국민, 소비자가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농업도 산다.”

 물가만이 아니다. 농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2010년 농가 전체 소득은 3212만원으로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4809만원보다 적다. 그러나 근로 계층인 60세 이하를 기준으로 하면 농가소득(4857만원)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보다 오히려 많다.

 -도농 소득이 역전됐다. 농업 소득 보전 정책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투 트랙으로 하겠다. 고령농은 농지연금제도 등 복지제도를 통해 농촌에 계속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이 도시로 가면 모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돼 정부 부담이 오히려 커진다. 상대적으로 젊고 유능한 농민에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하겠다. 농민에 대한 과보호는 없다.”

 -농업계는 한·미 FTA에 이어 한·중 FTA도 반대한다.

 “국가 발전 전략으로 FTA는 필요하다. 지금 한·일 간 경제력 격차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메이지 유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현재 한국이 FTA를 맺은 국가를 면적으로 따지면 지구의 60%쯤 된다. 중국과만 하면 거의 전 세계와 FTA를 맺는 셈이다. 다만 핵심 농산물은 한·중 FTA 협상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다음 정부가 판단해 정부 조직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산 분야가 농식품부로 온 후 수산 직불제 도입 등 많은 발전이 있었다. 수산 부문을 굳이 별도로 둬야 하는지 의문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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