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그녀의 전성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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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04면

18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 가수 패티김(74)의 삶을 담은 책『그녀, 패티김』(돌베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작은 언쟁(?)이 있었습니다. 책을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가수 조영남(68)씨가 짐짓 볼멘소리를 냈거든요. “사실 표지 띠 사진을 한창 전성기 때 것으로 쓰자고 했어요. 그런데 굳이 지금 모습을 쓰겠다 하시더라고요.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보세요, 전 아직도 전성기예요. 그리고 그 사진은 뒷 표지에 작게라도 쓰지 않았습니까.”(패티김)
“(책이 안 팔려도) 저는 피해갈 구멍이 생겼습니다. 제 말을 안 들으셨으니까.”(조영남)

띠지에는 성성한 백발에도 발그레한 볼, 살짝 분홍빛 입술, 그리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의 패티김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가수생활 55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하지만 여전히 무대를 향한 열정을 감추지 못하는 자연인 김혜자였습니다.

이날 패티김은 검정 정장에 검정 모자, 호피무늬 스카프에 호피무늬 롱 부츠를 신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러시아 귀족처럼 꼿꼿하게 입장했습니다. ‘무대의상을 입고 나서는 의자에 앉지 않고, 무대에서 신는 신발로는 땅을 밟지 않는다’는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곧 태어날 둘째 손녀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러 미국으로 가지만 “할머니 소리는 손녀한테만 듣겠다”는 여걸이 거기 있었습니다.

“제 무대는 없지만 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후배들에게 등대가 되고 싶네요.”
그는 여전히 ‘전성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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