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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화 1504통 … “빚 갚으려 수저까지 팔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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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 직원들이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구 한 재래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정신영(45·가명)씨. 물건 뗄 돈이 없을 때마다 조금씩 빌린 사채가 3600만원이다. 사채 이자를 내기 위해 지난달 말 일수로 400만원을 또 빌렸다. 24만원을 선취 수수료로 내고 65일간 매일 8만원씩 갚는 조건이다. 65일간 그가 무는 수수료와 이자는 144만원. 연 이자율로 따지면 202.2%에 달하는 폭리다. 보름 만에 은수저를 내다 팔고 금반지를 내줬다. 그는 “아직 한 달 넘게 매일 8만원씩 줘야 하는데 이제 더는 팔 게 없다”고 울먹였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의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19일 오전 접수된 사연이다. 18일 문을 연 신고센터엔 첫날 하루에만 1504건의 상담과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종전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관련 신고 건수(하루 평균 120건)의 12배에 달한다.

 19일에도 신고센터는 분주했다. 이날 오후 4시까지 1064건이 신고됐다. 상담원들의 통화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50평 남짓한 센터 사무실을 꽉 채웠다. 다섯 줄로 마주 보고 앉은 상담원들은 모두 60여 명. 대부분 금융회사에서 파견 나온 상담 직원들이다.

 전화는 금감원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몰렸다. 18일 오전 한때 전화가 불통됐다. 동양증권에서 파견된 송현주(41·여) 상담원은 목이 잠겨 있었다. “화장실 갈 짬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신고되는 피해는 불법 고금리다.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율은 연 39%. 하지만 대부업체도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신용이 낮거나 담보가 없는 서민들은 연리가 50%를 훌쩍 넘는 불법 사채를 여전히 이용하고 있었다. 롯데캐피탈에서 파견 나온 이장희(42) 상담원은 “금융 지식이 없어 대출 상담을 꺼리는 분들도 사채에 손을 대곤 하신다”고 말했다.

 대출 사기도 심각하다. 첫날 접수된 사연 열에 하나꼴(9%)이었다. 충북 음성군의 한 40대 자영업자는 “급전대출 광고지를 보고 전화해 6000만원을 빌리려 했더니 선이자로 600만원을 보내라고 하더라. 600만원을 보냈더니 연락을 끊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피해를 신고해도 뾰족한 답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꽤 된다는 것이다. 연 39%가 넘는 폭리를 취하는 사채업자는 경찰 신고 대상이지만, 많은 채무자는 후환이 두려워 이를 꺼린다. 정신영씨는 “사채업자들이 ‘신고해봤자 우리는 벌금만 내면 된다. 나중에 길게 생각하라’고 협박한다”고 털어놨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바꿔드림론’ 혜택도 제한적이다. 연체 기록이 있거나 채무 조정 중인 신용불량자는 대출 전환이 안 된다.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 서민금융 역시 연체 기록이 없어야 이용할 수 있다. 한 상담원은 “피해자분께 서민금융을 활용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더니 그 기준에 해당됐으면 사채를 썼겠느냐고 되묻더라”며 씁쓸해했다.

 금감원 양일남 서민금융총괄팀장은 “본인이 어느 수준의 이자를 내고 있는지, 서민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께 좋은 홍보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며 “신고 접수 과정에서 새로 부각되는 문제점에 대해선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센터는 5월 말까지 확대 운영된다. 대표 전화번호는 1332다.

불법 사금융 신고센터 첫날
금융지식 없어 당한 피해 상당
열 명에 한 명은 대출 사기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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