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깎는 여자, 한복 짓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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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뛰어난 기능인력 발굴을 위해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남(禁男)’ ‘금녀(禁女)’의 벽에 과감히 도전한 참가자들이 있어 화제다.

 울산지방기능경기대회 CNC(컴퓨터수치제어) 선반 직종 경기에 나선 배경진(23·사진 왼쪽)씨가 그 주인공. 배씨는 전국적으로 CNC 선반 직종에 출전한 166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12일 시작해 17일 막을 내리는 이번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는 48개 종목의 경기가 치러진다. 이들 종목 중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입력해 공작물을 깎아내는 CNC 선반 경기는 사실상 남자 선수들의 전유물이다. 1990년 경기가 시작된 이후 여자 선수는 단 4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방기능경기는 3위권에 입상하면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 자격이 부여돼 경쟁이 치열하고 과제도 만만찮다. 하지만 배씨는 “여자는 나 혼자뿐이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도전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라며 당당하게 말한다.

 배씨는 울산정보통신고 재학 시절 선반 관련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2008년 졸업 후에는 진로를 바꿔 취업이 잘된다는 김천대학 물리치료과에 진학했다. 2010년부터 1년간 물리치료사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던 배씨는 지난해부터 울산직업능력개발원에서 다시 기계 가공을 공부하고 있다.

 서울대회에 출전한 이건호(17·오른쪽)군은 한복 직종에서 유일한 남자 선수다. 한복 직종은 그동안 현장경력이 많은 40대 이상 여성이 주로 참여하는 대표적인 ‘금남(禁男)’ 종목이었다. 실제로 이 종목에 출전한 선수 150명 중 남자는 이군 혼자뿐이다. 그는 또 지방기능경기대회 사상 한복 직종의 첫 남자 선수이기도 하다.

 이군은 12~14일 용산공고에서 소매가 짧은 신라·고려 시대 복식인 반비(半臂)를 시험 과제로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한복을 공부했다. “디자이너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독특한 멋을 가지고 있는 한복을 배우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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