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직원들, 10분안에 답장 안주면 화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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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일 기업의 첫 LNG 개발사업 현장인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한국가스공사와 미쓰비시상사 관계자가 인도네시아 감독과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가스공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청담동 격인 세나얀 지역. 명품만 취급하는 백화점에다 고급식당이 즐비한 이곳 센트럴 세나얀 빌딩 13층엔 최초의 한·일 합작 액화천연가스 회사인 동기-세노로 LNG(DSLNG)가 입주해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일본의 미쓰비시(三陵)상사와 손잡고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회사다. 동기-세노로는 인도네시아 동부 술라웨시섬에 건설 중인 LNG 생산기지가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먼저 이슬람식 기도실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네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르타미나(Pertamina)도 참여한 3자 합작이라 직원 중에 이슬람 신도가 적잖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 88%가 이슬람교인이다. 그러나 기도실을 제외하면 각국의 문화적 특색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미쓰비시상사 다쿠지 곤조(近造 卓二) 부장은 “기도실만 빼면 여긴 뉴욕인지 싱가포르인지 모를 만큼 국제적”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사무실에서 쓰는 언어부터가 영어 한 가지다. 본국과 소통할 경우가 아니면 자국 언어 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상대국 임직원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매주 월요일은 단합을 위해 회사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게 원칙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각국의 국기를 요청하자 현지인 홍보실 직원 니아 사리나스티티는 “그런 건 없다”며 난처해했다.

 DSLNG는 한·일 양국 기업이 손잡은 첫 LNG 공동개발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으며 지난해 2월 첫 삽을 떴다. 동일본 대지진 이전에 한·일 협력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한·일 합작시대의 선두주자인 셈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문화 차이로 인해 회의 시간을 맞추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우선 이슬람 기도시간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또 인도네시아인의 경우 조금 늦는 게 미덕처럼 돼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정시에 나타나는 게 예의였다. e-메일을 주고받는 행태도 달랐다. 한국 직원은 신속하게 답장을 하는 데 익숙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직원은 딴판이다. 만약 한국 직원이 10분 안에 짧게라도 “잘 알았다(Well-noted)”라는 답장을 안 주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화가 나서 답을 안 주는 거냐”고 물어온다고 한다.

 호칭으로 마찰을 빚은 적도 있었다. 일본인 직원이 영어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직원에게 일본식으로 “김상(さん)”이라 부른 게 화근이었다. 그러자 한 한국인 직원은 술자리에서 “일본식으로 부르면 우린 아무래도 기분이 좋진 않다”고 항의해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결국 다음날부터 모든 호칭은 엄격하게 영어식으로 부르기로 됐다. 기업의 전통 역시 무시 못 할 갈등 요인이었다. 회의록 작성법부터도 달랐다. 한 번은 일본 측에서 한국 측이 작성한 회의 문건의 작은 문법적 오류를 일일이 지적해 회사 관계자 모두에게 회람시키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가 갈등을 부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화합을 일구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측 건설 담당인 루디 수지아르토는 “얼마 전 뎅기열로 갑자기 입원을 했는데, 한국 임원이 일요일인데도 병문안을 와줬다”며 “꼭 아버지 같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경을 뛰어넘는 동지애 덕에 공사는 1년 넘게 무사고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업의 목표는 2014년부터 연간 200만t의 LNG를 생산해 한·일 양국에 공급하는 것이다. 한국 측에서 볼 때 이 프로젝트는 이윤뿐 아니라 여러 이점이 있다. 한국가스공사 조강철 차장은 “이번 공사를 통해 일본의 설계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며 “LNG 개발 프로젝트를 한·일이 함께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어 앞으로도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김영선 주인도네시아 대사는 “DSLNG는 한국 기업이 단순 지분 참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인력을 파견하는 프로젝트로, 한·일 간 제3국 진출 협력의 상징적 모델”이 라고 전했다.

특별취재팀=남정호 순회특파원
한우덕·전수진 기자
협찬 : 원아시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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