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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갈등 해소법 ‘감정코칭’

중앙일보

입력

“지금 내 마음속엔 어떤 감정이 숨어있을까요?” 김예윤(1)양과 김예린(4)양이 감정코칭 인형을 앞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학교에 가기 싫고 숙제도 하기 싫어요, 힘들다구요!” 주부 박현주(42·서울시 양천구 목동)씨는 며칠 전 초등 5학년인 큰딸과 갈등을 겪었다. 주말 동안 못다한 숙제가 원인이었다. 월요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깨어난 딸은 숙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박씨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박씨에게 가장 먼저 일어난 감정은 짜증과 분노였다. 하지만 그는 잔소리를 하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주말 내내 놀아대길래 숙제 하라고 말했더니 잔소리한다고 짜증내더라구요. 결국 날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이전 같았으면 바로 큰소리로 화를 냈을 테죠.”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어깨에 손을 얹었다. 1분 정도 지나자 딸은 울음을 멈췄다. 이후 책상에 앉아 숙제를 꺼내 들었다. 한 시간이 지난 뒤 숙제를 모두 마친 아이는 웃으며 등교했다. 이런 해결방법은 박씨에게도 신선한 변화다. 박씨는 “딸에게 화가 난다는 내 감정을 인정하자 화가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만약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도 함께 화를 냈다면 아침시간이 엉망이 됐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지난해 10개월 동안 감정코칭 강좌를 수강하며 익힌 자녀와의 의사소통법 덕이다.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감정코칭법을 활용해볼 수 있다. 감정코칭은 자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뒤, 이후에 나타나는 행동이나 심리를 제한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언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받은 자녀는 스스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교구나 인형도 감정코칭의 한 방법으로 활용된다. 김예린(4·수원시 권선구 입북동)양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내키지 않을 때 종종 감정코칭 인형을 사용한다. 슬픔부터 기쁨까지 7가지 종류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은 인형들을 활용한다. 엄마에게 혼이 난 뒤엔 커다란 감정인형 뱃속에 ‘슬픔’과 ‘화’를 나타낸 작은 인형을 넣어 감정을 표현하는 식이다. 김양의 어머니 주정희(37)씨는 “아이가 우울하거나 혼났을 때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인형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엄마가 아이의 감정을 쉽게 알아차려 아이와 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감정코칭 이론은 부모의 자녀교육태도 유형을 크게 4가지로 나눈다. 축소전환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축소하거나 다른 감정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하는 유형이다.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해 나쁜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끼던 장난감이 망가져 우는 아이에게 “뭘 그런 걸로 울고 그래. 간식이나 먹자”며 슬픈 감정의 축소를 강요하고 식욕으로 전환할 것을 유도하는 식이다.

 억압형 부모는 축소전환형 부모보다 아이의 감정을 강하게 비난하고 억누른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면 매를 들거나 야단을 치며 감정 표출을 금지하는 식이다. 방임형 부모는 아이의 모든 감정을 인정하는 유형이다. 하지만 감정을 인정만 해줄 뿐, 적절한 피드백이나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짜증과 분노를 비롯한 모든 감정의 표출에 제재를 받은 적이 없는 아이는 감정조절능력을 익히지 못해 원활한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게 된다.

 감정코칭형 부모는 위의 3가지 유형의 장·단점을 조합한 형태다. 최 박사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공감을 하지만, 행동에는 분명한 제한을 둔다”며 “모든 감정을 허용하지만,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감정코칭형”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스스로 위험에 처할 만한 행동은 정확하게 제지하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둔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므로 아이의 자존감이 높고, 자기주도학습능력도 자연스럽게 형상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박사는 자녀와 갈등을 빚을 때 5단계에 걸쳐 감정코칭을 시도해 볼 것을 권했다. 1단계는 감정포착이다. 감정코칭은 아이가 감정을 보일 때 이뤄져야 하므로 평소 아이의 감정을 파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중 관여가 필요한 감정을 아이가 표출한다고 느낄 때 2단계 감정적 개입이 시작된다. 3·4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경청하는 단계다. 아이가 스스로 표현하는 감정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공감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다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좀더 명확히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5단계는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계다. 감정과 별개로 행동에서의 최소한의 기준과 한계를 정해주는 식이다. 화가 난 감정 자체는 공감하지만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든가, 욕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제재가 한 예다. 아이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볼 수도 있다.

 HD가족클리닉 박현아 강사는 “의도를 갖고 아이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것은 감정코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잘못 사용하면 아이들이 ‘~했구나’식의 어법에 반감을 보이며 반항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감정코칭(Emotion Coach)=미국 워싱턴주립대 존 가트맨 박사가 처음 개발한 개념.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 뒤, 함께 공감하면서 자녀의 심리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는 가트맨공인치료사 자격을 취득한 최성애 박사가 2005년 처음 도입했다. 2006년에 감정코칭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2011년에 최박사와 존 가트맨 박사가 공동 집필한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 출간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엔 서울시교육청이 교직원 880명이 감정코칭 연수를 받기도 했다.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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