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원 사건’ 은폐·면피 말고 경찰청장이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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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5초’(4일)→ ‘1분20초’(5일)→ ‘7분36초’(7일). 경찰의 수원 살인 사건 발표는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가. 경찰은 당초 피해자의 112 신고가 짤막한 전화였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화가 7분 넘게 이어지며 피해자의 비명과 테이프 찢는 소리까지 들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경찰이 구출해주길 기대하며 전화를 끊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도 몸서리쳐지는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신고 직후 5명을 투입하는 데 그쳤고 3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10명을 추가로 보냈다. 현장에서도 학교 운동장과 같은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니는 등 긴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는 일선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의 나사가 완전히 풀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차피 성폭행은 이미 당했을 텐데…’ ‘밤에 난리 피워봤자 주민 민원에 우리만 다친다’는 무사안일주의가 형사들의 사고를 지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경찰을 믿고 여성과 노약자가 거리와 골목을 다닐 수 있겠는가.

 사건이 알려진 후에도 경찰은 잘못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불 켜진 주택 등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벌였다”고 했지만 “경찰이 왔었다”고 말하는 주민은 소수다. 112 센터와 관할 경찰서에 대한 감찰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경찰의 한심한 대응은 계속됐다. 서울경찰청은 경찰관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기사 댓글 달기’를 독려했다. ‘경찰관으로서 용서를 구한다’ ‘열심히 일하겠다’는 댓글로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그 유치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번 사건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감을 감안할 때 관련자 몇몇을 문책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112 센터를 비롯한 치안 시스템의 문제점과 함께 경찰의 근무 자세가 왜 이렇게 해이해졌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자리를 걸고 싸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문제다. 조 청장은 직접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