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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곡은 거뜬 … 색소폰 부는 부구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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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7일 음악학원에서 김정운 북구 부구청장이 부인 김묘숙씨와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해 11월 4일 점심 무렵 광주시 북구청 야외광장. 국화축제장을 둘러보던 공무원과 주민 80여명의 눈이 무대로 쏠렸다. 노래 ‘잊혀진 계절’을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와서다. 꽃 구경 온 이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였다. ‘조약돌’‘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 7080세대에 익숙한 연주곡이 30분간 쉼없이 이어졌다. 이날 흰색 와이셔츠에 오렌지색 넥타이를 갖춰입고 무대에 오른 색소폰 연주자는 김정운(57) 북구 부구청장이었다.

 “몇 년 전 교육을 갔어요. 강사가 ‘내일 당장 공무원 그만뒀다고 가정하고, 1주일간 일정을 써보라’고 하더군요. 등산·골프 등 몇개를 적고 나니 더 이상 쓸 게 없었어요. 그제서야 은퇴 후가 막막 하더군요.”

 교육에서 돌아온 뒤 2010년 1월 부인(김묘숙·56)과 함께 음악학원에 등록했다.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세개 이상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나이 들수록 자식 이야기 빼면 대화 꺼리가 없어진다”며 “같은 취미를 가져야 화목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부인과 스키·골프·음악을 함께 한다.

 색소폰은 배우기 쉽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처음엔 드럼을 배웠던 부인 김씨도 지금은 색소폰으로 바꿨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2011년 광주시 종합건설본부장(부이사관)으로 승진한 그는 학원에 가기 위해 저녁 약속을 피했다. 술 자리를 하다보면 연습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만나기 힘들다” “높은 곳에 가더니 변했다” 는 등 여러 말이 나오기도 했다.

 취미로 시작한 색소폰은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됐다. 1주일에 2∼3번은 꼭 연습하고, 주말·휴일이면 보충도 한다. 덕분에 100여곡 정도는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지금도 악보는 볼 줄 모른다. 컴퓨터 자판을 외우지 않고 치듯이 손가락이 색소폰에서 자연스레 움직이도록 익혔다. ‘알고 싶어요’ ‘칠갑산’ 등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색소폰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그는 “연주하는 동안엔 잡념이 없다. 폐활량이 좋아졌고 운동량도 많아 소화도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구청장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하루 1시간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권한다”며 “나이 먹은 나도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무엇을 못하겠냐”고 말한다. 그는 17∼26일 북구청 광장에서 열리는 봄꽃 축제 무대에 다시 설 예정이다.

 가족을 위한 특별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 “6월에 결혼하는 큰 아들(30)을 위해 결혼식장에서 아내와 함께 색소폰을 연주한다. 서로 한 소절씩 연주한 뒤 마지막 부분은 같이 부를 계획이다”고 귀띔했다. 4∼5년 뒤에는 은퇴자를 중심으로 밴드를 꾸릴 계획이다. 음악하는 사람끼리 모여 양로원·교정시설 등에서 무료 공연를 하기 위해서다. 전남 진도 출신인 그는 1973년 공직에 입문해 상수도사업본부시설관리소장·도로과장 등을 지냈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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