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한 순찰차 10m 앞에서 … 그녀는 6시간 살아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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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 토막 살해사건의 피해 여성은 납치당한 뒤 6시간 동안 생존해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112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행현장 10m까지 접근하고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피해 여성이 112에 구조 전화를 한 지 불과 몇 분 만이었던 것으로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밤새 딸을 찾아나선 피해 여성의 아버지는 “경찰이 순찰차 안에서 졸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 수사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13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여성의 비명소리가 이어진 급박한 112 전화신고 내용도 언론보도 이후인 엿새 만에 보고받았다.

 8일 경기경찰청 등에 따르면 수원중부서 상황실과 강력팀은 1일 오후 10시50분쯤 피해자 A씨(28·여)가 성폭행당하고 있다는 긴박한 신고를 단순 성폭행 사건으로 판단하고 김평재 수원중부서장(직위해제)과 경기경찰청에 보고하지 않았다. 수원중부서는 범인인 중국동포 우위안춘(오원춘·42)씨를 검거한 2일 오전 11시50분에야 경기경찰청에 보고했다.

 경찰의 사건 축소·은폐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초 경찰이 밝힌 A씨의 112 신고전화 시간은 1분20초가 아닌 7분36초 동안 이어졌다. 이어진 통화에서는 “잘못했어요, 아저씨 아파요, 악-”하는 A씨의 비명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A씨가 가혹행위를 당하는 듯 “악 악 악 악” 하는 고통스러운 음성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를 듣고 있던 일부 112신고센터 직원은 “부부싸움 아니냐”며 안일한 반응을 보였다. 통화내용은 당시 112신고센터 직원 20여 명이 모두 듣고 있었다. 다음날 A씨 살해 사실이 확인된 뒤 비명소리를 듣고서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통화시간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우씨는 경찰조사에서 1일 오후 10시50분쯤 수원시 지동 주택가에서 귀가 중이던 A씨를 자신의 셋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2일 오전 5시쯤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초기대응만 적절히 했더라도 피해여성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수원=정영진·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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