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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후보가 비호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5호 30면

최근 지방대학 광고 포스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성실해 보이는 대학생 네 명이 권위적 제스처로 뭔가 중요한 지식을 전해주는 것 같은, 교수처럼 차려입은 백인 남자 옆에 서 있는 거였다. 이런 식의 광고는 한두 개가 아니다. 아직도 일부 한국사람들은 서양인(대개 미국인이지만)의 지지를 받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개발시대 때나 통하던 사고방식이다. 독도나 한식 홍보 광고가 항상 미국 뉴욕 타임스에 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 또 우측통행을 권유하는 포스터들을 보면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얼마나 많은 서양 국가가 지키고 있는지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이 ‘글로벌’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건지 나로선 이해가 안 된다.

몇 달 전 정봉주 전 의원 구속에 대한 칼럼을 썼다. 그러자 서구에선 이런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영국에선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묻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 “한국과 비교할 때 영국이야말로 개방적 태도의 모델 케이스”라는 식의 대답을 기대한 것 같다.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된 나라다. 그런데도 영국 정부는 다음 달 일반인의 e-메일과 전화, 그리고 웹사이트 방문 기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민감한 증거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공개 재판을 허용하는 방법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선 최소한 정부의 민간인 사찰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잘못됐다고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영국에선 머지않아 정부의 민간인 감시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2001년 이전에 광범위한 테러를 경험한 바 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북아일랜드의 다양한 준군사 그룹들이 3000명 이상의 시민을 살해했다. 요새는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을 근거로 시민적 자유가 축소되고 있다. 진짜 범죄자들을 감시할 방법을 찾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를 감시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과오 가능성(fallibility)이 있다. 권력자들도 실수를 하거나, 도덕적 결함과 편견이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 재판을 허용하고 시민을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건 결코 안 된다.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혹은 어떤 나라에서든 국민은 정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주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만큼’일 것이다. 정부도 약점과 결함투성이인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남용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면 권력남용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남용이란 주제를 좀 더 살펴보자. 나는 하루 종일 떠들어대는 총선 출마자들의 시끄러운 음악을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식의 전략이 후보자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주는지에 대해 누가 연구한 게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 후보들이 제발 다른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마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투표권이 없다. 있다 해도 다음과 같은 후보에겐 투표하고 싶지 않다. ▶자기 이름을 집어넣은 개사곡으로 좋은 노래 망치는 후보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겠습니다’ 같은 문구를 적은 명함 돌리는 후보(다음에 만났을 때 당신을 처음 만난 상황을 기억하는지 물어보시라) ▶지역을 위해 뭘 할지보다 자기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과 가깝고, 얼마나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명함에 적은 후보 ▶무작정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후보(선거 다음 날부턴 절대 안 보낼 거다) ▶선거공보에 미래, 꿈, 사랑, 희망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010년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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