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표절 고백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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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38면

나는 뉴스에서 표절이란 말을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표절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이렇게 말하면 어딘지 거짓말하는 기분이 든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나는 경제학과를 다니긴 했지만 제대로 경제학을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무슨 학과 출신이냐고 내게 물으면 난처하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이나 친구들은 모두 내가 국문학과를 지망할 줄 알았다. 국어를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과목에 비해 그나마 국어 성적이 나았고, 친구 따라 간 강남이긴 했지만 문예반에 들어가 매주 합평회도 하고 백일장에도 다니고 시화전이나 교지에 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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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는 1980년대였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같은 서적을 교과서 대신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시대가 고약했다. 철없는 생각이지만 그런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것은 철없는 낭만 같았다. 시나 소설이 아니라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작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학과를 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모집정원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막상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은 정교하긴 했으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최루탄도 화염병도 없었다. 대신 각종 수치와 그래프가 난무했다. 나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수업에 빠지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데모를 따라다니거나 학교 앞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당연히 학점이 나빴고 부족했다. 전공과목만 들어서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채울 수 없었다. 나는 중국문학개론을 신청했다.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불러 격려해 주었다. 나는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학생들은 주로 1, 2학년 여학생이었고 교수님까지 여자였다. 학기말 시험은 리포트 과제로 대체한다고 했다. 교수님이 추천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의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열심히 해야 했지만 그 무렵 학교에 데모가 한창이었다. 나는 어쩌다 삭발 단식 농성에 참여했다. 그러느라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리포트는 한 자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3학점이나 되는 과목을 ‘빵꾸’낼 수는 없었다. 나는 편법을 썼다. 도서관에서 대략 주제에 맞는 문예지의 논문을 하나 골라 약간의 편집, 그러니까 문단의 순서를 바꾼다든지 하는 정도의 편집을, 그것도 귀찮아 앞부분에만 하고 그대로 베껴 제출했다. 제출하기 전에 한 번 읽어보니 현학적인 용어가 많이 들어 있어 괜히 흐뭇하고 으쓱했다.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말이다.

표절이 아니라 아예 복사한 리포트를 나중에 돌려받았다. 첫 장부터 교수님이 파란색 만년필로 달아준 코멘트가 빽빽했다. “이 명제의 논리적 근거는?” “전제로 삼은 명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것” “이 두 문단은 앞뒤가 바뀐 것 같음” 등등. 그러나 둘째 장부터는 아무런 코멘트도 없었다. 교수님의 유려한 필체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곳은 마지막 페이지였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서툴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로 쓸 것! 정직할 것!”
문학이란 무엇인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서툴더라도 정직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쓰는 글이란 사실은 알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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