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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목장의 결투 … ‘신 오일쇼크’ 이기는 투자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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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하는 국제 유가가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가가 계속 오르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유발해 대부분 자산의 가치를 갉아먹는 것은 물론 경제 회복 흐름에도 찬물을 끼얹을 게 분명하다. 올 들어 기세등등하게 오르던 글로벌 증시가 최근 주춤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신 오일쇼크’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모든 위기 속에는 기회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던가. 유가 상승이란 변화를 즐거움으로 만들어줄 투자 상품들도 있다. 실물유전펀드, 유가선물지수펀드, 러시아펀드, 원유 관련 파생결합증권(DLS) 등이 그렇다. 고유가 시대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들로 재테크의 방어전선을 구축해 보자.

“고(高)유가가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Oil is the new Greece).”

 HSBC의 스테판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초 내놓은 보고서 제목이다. 그는 “유가 상승이 계속되면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가 약해지고 신흥국의 물가상승 위험이 다시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고유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개발포럼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고유가는 소비를 위축시켜 글로벌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초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럽 재정위기로 상승세가 꺾이는가 싶었지만 다시 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0달러를 돌파했다.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30달러에 육박한다.

 고공 행진하는 유가는 경제에 큰 시름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유가 상승이 1970년대와 같은 석유 파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나온다. 73년,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던 아랍 국가들이 원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까지 치솟았다. 79년에는 이란 혁명 발발로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유가가 두 배 뛰었다. 1, 2차에 걸친 오일 쇼크는 전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불안감이 깊어지는 건 유가 상승의 원인 때문이다. 2008년 5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턱밑까지 치솟은 건 수급의 문제라기보다는 투기 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으로 시장은 해석한다. 당시 골드먼삭스의 한 상품 담당 애널리스트는 ‘수퍼 스파이크(super spike, 장기 대상승)’ 이론을 내세우며 유가가 2년 내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교롭게도 골드먼삭스의 큰 수익원 중 하나가 유가 선물시장이다. 그땐 골드먼삭스가 그들의 명성을 이용해 시장을 조작한다는 음모론까지 돌았다.

 그러나 최근의 상승에는 1, 2차 오일쇼크 때처럼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공급 차질이 작동했다. 세계 원유 소비의 3%를 담당했던 이란산 원유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공급을 늘릴 것이라고 하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의 경제조사 기관인 IHS글로벌인사이트는 세계 석유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는 사태가 발생하면 유럽 경제가 1.5% 위축되고 미국 경제는 0.9%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나아가 중국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인의 휘발유 소비량은 연 1300억 갤런(약 4900L)이다. 휘발유 가격이 1달러 상승할 때마다 소비자 지출은 1.2%, 국내총생산(GDP)은 0.8%씩 각각 줄어들 것으로 미국 통신사인 마켓뉴스인터내셔널은 분석한다.  

고유가는 주식시장에도 악재다. 고유가 상황이었던 2007년 9월~2008년 7월, 유가와 S&P500지수는 역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 리서치 회사인 비앙코리서치의 하워드 시몬스 투자전략가는 “유가의 상승세 지속을 고려하면 미국 주가는 상당한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큰 한국은 더 문제다. 과거 1차와 2차 오일 쇼크 때를 기준으로 전후 2년간 평균 GDP 성장률은 각각 1.7%포인트, 6.8%포인트 떨어졌다. 원화 가치도 끌어내렸다. 각각 14%, 18% 떨어졌다. 물가에 준 충격은 더 컸다. 1차 땐 17%, 2차 땐 11.2% 급등했다.

데이비드 립튼 IMF 수석 부총재는 지난달 방한해 “유가가 추가로 더 오르면 한국과 같이 석유 수입이 많은 나라에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원유 가격 상승 등으로 수입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올랐다. 석유제품 가격이 18.2% 오른 게 수입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유가가 10% 오를 때 경제성장률은 0.5%포인트 떨어지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0.7%포인트 내외 오르고 경상수지는 40억 달러 악화, 원·달러 환율은 40원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는 대체로 꾸준한 상승을 점친다. 그러나 수퍼 스파이크나 ‘수퍼 사이클’ 같은 대세 상승론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영국 경제분석 회사인 롱뷰이코노믹스 크리스 와틀링 대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유가 등 원자재 상승 사이클이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의 세계에서 ‘쉼’은 없다. 투자를 안 하고 있을 때도 쉬는 게 아니라 기회를 엿봐야 한다. 고유가 속에서도 투자 기회는 있다. 미국 온라인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최근 에너지 관련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가 유가 상승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핍스서드애셋매니지먼트의 키스 워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에너지 주식은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에 대해 유력한 헤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본사에서도 이미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과 관련된 업체의 주식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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