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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소비는 쑥쑥 느는데 … 우울한 녹차 수도 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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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일 오후 전남 보성군 율허면 선다원(茶園). 199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6만6000㎡ 규모의 차 밭을 운영하는 서상균(65)씨는 “요즘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곡우(穀雨·20일)부터 첫 잎으로 만드는 우전·세작 등 고급녹차를 생산하지만, 예년에 비해 차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시세가 좋았던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한 해 7000만원가량은 벌었다고 했다.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연간 3000여만원은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소득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보성차생산자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커피 영향으로 소비량이 급감했다”며 “커피를 ‘달콤쌉쌀한 악마의 유혹’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커피향의 유혹에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커피 열풍이 전남 보성군의 녹차 산업을 강타하고 있다. 보성은 전국 차 재배·생산량의 30∼40%를 차지해 ‘녹차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한국에서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한 첫 상품도 보성 녹차다. 보성에서 만든 녹차 소비가 줄어든 건 2∼3년 전부터다. 커피 호황 시기와 맞물린다. 3305㎡ 미만의 영세 농가는 대부분 폐원(廢園)했거나 폐원을 준비 중이다. 농가들은 찻잎을 일부만 따거나 비탈에 위치한 녹차밭은 묵히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2일 보성군에 따르면 녹차의 인기가 높았던 2007년 재배 면적은 11.64㎢에 달했다. 재배 농가가 2005년 982가구에서 2006년 1358가구, 2007년에는 1363가구로 급증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로는 하향세가 뚜렷하다. 지난해에는 2007년에 비해 재배 면적은 1.01㎢, 농가 수는 357가구가 줄었다. 하루 1명당 5만∼6만원의 인건비를 들여 찻잎을 따 봤자 찻잎을 팔 곳이 없어서다. 손으로 따는 고급녹차 잎은 ㎏당 4만원 선을 유지하지만, 6~9월 기계로 수확하는 녹차 잎(티백·음료용)은 ㎏당 2000원에서 800원으로 떨어졌다. 보성읍에서 녹차밭을 가꾸고 있는 최모(66)씨는 “커피는 신문·TV 광고와 드라마·영화 등을 통해 홍보가 잘 되지만 녹차는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녹차의 대체재인 커피는 이 기간 수요가 급증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닐슨코리아가 추정한 지난해 커피전문점 가맹 점포 수는 9400여 개. 3년 만에 51%가 늘어났다. 여기에 소형 점포까지 포함하면 전국 커피숍은 1만5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목 좋은 곳엔 이미 커피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동서식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민이 마신 커피는 총 232억6900만 잔. 성인 기준으로 1년에 약 670잔, 하루 평균 1.83잔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전남도농업기술원 녹차연구소 신기호 박사는 “녹차도 인삼·홍삼처럼 공동판매장을 만들고, 기계화를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춰 적극적인 녹차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보성=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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