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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토박이론 vs 야권연대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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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재오 후보가 지난달 31일 진관동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왼쪽) 천호선 후보가 1일 갈현동 물빛공원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뉴시스]

‘서울 은평을’은 민심이 롤러코스터처럼 변화무쌍한 지역구다. 2008년 4·9 총선에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서울 48개 지역구 중 40곳을 차지할 때 은평을은 이재오(40.8%) 대신 창조한국당 문국현(52.0%) 후보를 뽑았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한명숙(49.9%) 후보에게 더 많이 투표(오세훈 44.7%)했다. 그러나 그 직후 벌어진 7·28 재선거에선 민주당의 장상(39.9%) 후보 대신 이재오(58.3%) 후보를 다시 뽑았다. ‘이재오’에 대한 애증(愛憎)이 번갈아 표출돼온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다시 나경원 후보보다 무소속 박원순(56.9%) 후보에게 표심이 쏠렸다.

 이번 4·11 총선에선 5선에 도전하는 이재오 후보에게 노무현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한때 여권 최고 실세로 꼽히던 새누리당 중진 의원과 통합진보당 출신 야권 단일후보 간의 대결을 통해 ‘야권 연대’의 파괴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지난달 29일 구산동 거리에서 만난 이재오 후보는 자신이 ‘43년 토박이’임을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1970년대 초반 대성고 교사 시절부터 은평구에서 43년을 살았고 구산동 집에서만 30년을 살았다. 은평에선 2040세대도 초등학교나 중·고교 졸업 때 나하고 사진 한 번 같이 찍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 재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선거운동원을 대동하지 않는 ‘나홀로 유세’를 계속하고 있다.

 이 후보는 천 후보의 ‘MB정권 심판론’에 대해 “여기는 새누리당이니 정권 심판이니 하는 개념보다 이재오를 옆집 할아버지나 아저씨로 여긴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여당을 했던 사람(천 후보)이 심판론을 내세우면 먹히겠느냐”고 일축했다. 그는 “은평구 출신 정치인이면 몰라도 이재오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외부에서 날아온 후보로는 식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은평발전의 종결자는 이재오”라며 “은평 발전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천 후보는 “은평은 MB정권 심판의 종결지가 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요즘 당의 색깔인 보라색 대신 민주당 상징색인 노란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 1일 오후 불광전철역 NC백화점 앞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합동 유세에서도 천 후보는 노란색 점퍼에 ‘야권 단일 후보’라고 적힌 흰 띠를 멨고, 유 대표도 보라색 점퍼를 벗고 양복 정장 차림을 했다. 그러나 그와 단일화 경선을 치른 민주통합당 지역위원장 출신인 고연호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문제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고 후보는 지난달 31일 대조동에서 열린 천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 관악을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 경선과정에서의 ‘앙금’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 후보는 “(지난해 7·28 재·보선 때) 나도 단일화 경선에서 (장상 후보에게) 패배해 본 경험이 있다”며 “고 후보가 어려운 (승복)결단을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선되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인 동시에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천 후보 측은 총리실의 사찰문건 가운데 “어청수 전 경찰청장이 2009년 4월 중순 이재오 전 의원을 비밀리에 만나 인사청탁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대목이 포함된 것을 쟁점화하고 있다. 천 후보 측은 1일 “이 후보가 현 정권의 잘못된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 후보 측은 “미국에서 귀국한 지 며칠 안 된 상황에서 그런 인사청탁을 받았다는 건 사실도 아닐뿐더러 이 후보가 ‘불법 사찰의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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