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현대투신 지원할 수도"

중앙일보

입력

현대건설과 현대증권.투신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취임 1백일을 맞아 각각 기자간담회를 연 진념(陳稔)재정경제부 장관이나 이근영(李瑾榮.사진)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에 그런 미묘한 변화가 담겨 있다.

예컨대 李위원장은 현대투신 문제와 관련, "주인이 있는 금융기관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 면서도 AIG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법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은 검토해보겠다" 고 말했다.

그가 '자구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낸다면' 이란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 얘기를 꺼낸 것도 그동안의 정부 분위기와는 달라진 느낌이다.

정부가 이처럼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은 현대그룹측이 나름대로 알맹이가 있는 자구책을 들고 나올 것이란 감을 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현대증권.투신의 외자유치=사실상 공적자금 지원을 뜻하는 AIG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AIG가 요구하고 있는 증권금융 지원자금의 만기연장은 법을 고쳐야 한다.

이 돈의 재원인 증권금융채가 비실명채권인데 금융실명법에 비실명채권의 만기는 5년을 넘지 못하도록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법까지 고쳐 가며 현대투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테두리 안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방안은 검토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그동안의 정부 입장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AIG로부터 어떤 요구도 전달받은 적이 없는 만큼 지원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없다" 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공적자금까지 대줄 수는 없지만 AIG가 투자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도와주겠다는 충분한 성의표시는 했다는 얘기다.

이같은 정부의 뜻은 최근 한국을 방문한 AIG실무협상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제는 AIG가 정부의 말을 믿고 투자할 것이냐는 최종 선택만 남았다.

◇ 현대건설 자구책=지난 5일 이근영 위원장은 "앞으로 현대건설에 신규자금 지원은 없을 것이며, 진성어음과 물대어음을 자기 힘으로 못막으면 무조건 부도처리할 것" 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3일 李위원장의 '신규자금지원 검토' 발언은 이같은 기존 입장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감자 및 출자전환 동의서도 현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까지 염두에 둔 '비장의 카드' 에서 자구책의 이행을 강제할 담보로 의미가 축소됐다.

결국 이같은 정부의 변화 조짐은 현대건설마저 죽이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과 현대측의 자구안에 파격적 내용이 담길 것이란 관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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