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IE 버그스텐 소장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정부는 2단계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시장원칙' 에 따라 추진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시장을 거스르지 마라" 고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도대체 '시장원칙' 이란 무엇인지,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프레드 버그스텐(사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에게 물었다.

그에게서 "은행을 은행답게 놔두는 것(Let the bankers be bankers)" 이라는 잠언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은행이 정책금융이나 내부자거래에 휘둘리지 않고 수익 극대화라는 은행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원칙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를 지낸 '실무형'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IIE는 민주당 쪽의 대표적인 두뇌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 요즘 한국 경제가 심상찮다. 제2의 위기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제2의 위기론은 너무 강한 얘기다. 위기를 겪은 국가가 회복했다가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지 한국은 위기극복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구조조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너무 빨리 회복했다는 게 문제다. 한국 국민들을 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완전한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위해선 평균 5년 정도 걸린다. 한국은 1998년초부터 구조개혁을 시작했으니 이제 절반 정도 온 셈이다. '완전한 개혁' 이란 부실을 해소하는 것뿐 아니라 시장경제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2~3년은 더 걸릴 것이다."

- 공화당 부시 후보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주요 통화의 환율과 한국 등 아시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향후 몇년간 달러값이 싸질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무역적자와 2조달러의 순외채 때문이다. 달러는 주로 유로화에 대해 평가절하되고, 엔화에 대해서도 약간 절하될 것이다. 원화는 달러에 비해선 절상될 것이지만 유로화에 대해선 조금 절하될 전망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한국 등 아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 일부에선 부시가 집권해 재정지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감세(減稅)정책을 펴면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금리가 오르고 결국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던데.
"달러 강세는 무역적자를 더욱 늘릴 뿐이다. 세금을 줄여 달러값이 오르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다. 80년대초 레이건 행정부가 감세 정책을 펼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경기 침체기였고 무역수지 불균형도 심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완전고용 상태에서 세금을 깎아 수요를 늘리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 요즘 한국에서 경제학이나 경제학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당신은 이를 어떻게 보나.
"일반 대중에게는 경제학자들이 나쁜 뉴스를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읊어대는 경제학자의 인기가 좋을 수는 없다. "

인터뷰 도와주신 분=재정경제부 주형환 과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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