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적자금 철저히 파헤쳐라

중앙일보

입력

여야가 공적자금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했다.

공적자금은 그동안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 운용으로 경제에 심각한 주름살을 지우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의 입안.집행.관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책임 추궁도 따라야 한다.

공적자금에 관한 한 정부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IMF 사태 이후 지금까지 금융 부실 해소에 투입된 공적.공공자금은 1백9조6천억원. 내년 예산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금융 불안이 가시기는커녕 다시 40조원을 더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됐다.

이뿐 아니다. 현대건설.대우자동차 문제가 터지면서 제3, 제4의 공적자금 조성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금융기관.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한다.

한빛은행은 정치권 개입 의혹이 제기되는 거액 사기사건에 휘말렸고, 동아건설에서는 거액의 정치자금이 조성.배포됐다.

일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주들은 이 돈으로 흥청망청했고, 몇몇 금융기관에서는 거액의 퇴직금 돈잔치를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도대체 정부는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공적자금이 자기 돈이었어도 이렇게 내버려뒀을까. 정부는 백서를 내놓았지만 국민의 의혹은 조금도 풀리지 않는다.

공적자금 지원에 대한 정책 판단은 옳았는지, 집행은 투명하고도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졌는지, 금융기관.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어느 정도였는지, 나간 돈 중 얼마나 회수될 수 있을지…. 의문점들이 너무 많다.

종금사 정리를 미루다가 더 큰 부실을 자초한 배경에는 정치적 고려 등 외부 입김은 없었는지, 과연 12조원을 퍼부은 제일은행을 5천만원에 판 매각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모든 의혹이 이번 조사에서 철저히 파헤쳐져야 하며 관련자에게는 인사조치 등 엄중한 문책도 따라야 한다.

공적자금은 적기(適期)에, 적지(適地)에 적확하게 조성.집행돼야 한다. 이번 국정조사는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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